윤동주

윤동주

다른 표기 언어 尹東柱 동의어 해환, 윤해환
요약 테이블
출생 1917. 12. 30, 북간도 명동촌
사망 1945. 2. 16, 일본 후쿠오카[福岡]
국적 한국

요약 일제강점기 시인. 암울한 민족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자아성찰의 시세계를 보여주었다. 대표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있다. 1943년 7월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경찰에 송몽규와 함께 검거되어 각각 2, 3년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45년 2월 16일 29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했다.

윤동주(尹東柱)
윤동주(尹東柱)

일제강점기의 시인. 교회 장로이면서 소학교 교사인 아버지 영석(永錫)과 어머니 김룡(金龍) 사이의 7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1925년 명동소학교에 입학해 1931년 졸업했으며, 중국의 관립소학교를 거쳐 이듬해 가족이 모두 용정(龍井)으로 이사하자 용정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이때 송몽규·문익환도 이 학교에 입학했다.

1935년 평양에 있는 숭실중학교에 편입하고 교내 문예부에서 펴내는 잡지에 시 〈공상〉을 발표했다. 〈공상〉은 그의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활자화된 것이다. 1936년 숭실중학교가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당하자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 4학년에 편입했으며, 옌지[延吉]에서 발행하던 〈가톨릭 소년〉에 윤동주(尹童柱)라는 필명으로 동시를 발표했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뒤 2년 후배인 정병욱(鄭炳昱)과 남다른 친교를 맺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기념으로 19편의 자작시를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판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필시집 3부를 만들어 은사 이양하와 후배 정병욱에게 1부씩 주고 자신이 1부를 가졌다. 1942년 도쿄[東京]에 있는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1학기를 마치고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편입했다.

그러나 1943년 7월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경찰에 송몽규와 함께 검거되어 각각 2, 3년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송몽규는 3월 10일에 29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했다. 유해는 용정의 동산교회 묘지에 묻혀 있고, 1968년에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정에 시비가 세워졌다. 1985년 이래 <월간문학>을 발간하는 한국문인협회에서 윤동주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또한 윤동주의 유일한 친필원고인 시 144편과 산문 4편이 2018년 5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윤동주 시비
윤동주 시비

문학세계

중학시절 동시 〈병아리〉·〈빗자루〉·〈오줌싸개 지도〉·〈무얼 먹구 사나〉 등을 발표했고, 연희전문학교 시절 〈조선일보〉에 산문 〈달을 쏘다〉와 교지 〈문우〉에 시 〈자화상〉·〈새로운 길〉 등을 발표했다.

그의 시는 대부분 현실세계의 모순과 그 모순을 초월하려는 의식을 내포하고 있지만, 초기의 시 몇 편은 예외적이다. 초기에는 평화롭고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주로 읊었는데, 행복한 유년시절을 노래한 동시 〈햇비〉와 아름답고 평화로운 동심(童心)을 노래한 시 〈반딧불〉·〈굴뚝〉·〈병아리〉 등이 그러한 작품이다.

그러한 사춘기의 낙관적인 생각은 시 〈눈〉에 와서 어느 정도 걸러지고 1937~38년에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고뇌와 갈등을 읊었다. 그뒤 자아와 세계 사이의 갈등을 나타낸 좀더 성숙해진 시를 썼는데 이때의 시의식은 때로 자전적 성격에서 출발하거나 종교적 의식의 천착(穿鑿)으로 이어지고, 때로 민족의식과 시대의식으로 발전하거나 고향지향성으로 나타났다. 대표시 〈자화상〉(1939)은 자전적 시로 실존적 의식세계의 출발점이 되며, 〈별 헤는 밤〉(1941)·〈참회록〉(1942) 등에 나타나는 자아성찰과 미래를 향한 낙관적 의지, 실존적 윤리의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달밤〉(1937)·〈유언〉(1937)·〈아우의 인상화〉(1938) 등에는 고독과 비애를 실감나게 담아냈다. 이러한 자전적 성격은 대표시 〈별 헤는 밤〉의 결구에 집약되어 있는데, 그것은 부끄러움과 절망으로 표현될 수 있는 자신의 지나간 삶을 토대로 자랑스러운 밝은 시대가 올 것이라는 확신의 목소리였다. 또한 〈사랑의 전당〉(1938)에서 보이는 새로운 삶에 대한 의욕은 〈십자가〉(1941)에 이르면 그리스도교적 신앙에 바탕을 둔 비장미로 바뀌게 된다.

일제강점기의 암담한 현실 속에서 자아의 갈등을 극복하려는 결의를 실존적인 성실성에서 찾은 것이다. 그것은 자기자신의 희생이라는 이미지로 나타나며 신앙인으로서의 실천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밖에 이러한 자기 희생과는 또다른 그리스도교적 세계인식을 보여준 시로 1941년에 발표한 〈태초의 아침〉·〈또 태초의 아침〉·〈새벽이 올 때까지〉를 들 수 있는데, 이 작품들은 인간의 근원적인 부조리와 더불어 그리스도교적인 예언을 담고 있다.

그는 일제에 의해 억압받는 민족의 현실에 정서적 연원을 둔 작품을 많이 썼다.

〈십자가〉를 비롯하여 〈무서운 시간〉(1941)·〈또다른 고향〉(1941)·〈간 肝〉(1941)·〈쉽게 씌어진 시〉(1942) 등이 그 예인데, 〈무서운 시간〉에서는 행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오히려 행동을 요구하는 상황이 나온다는 아이러니를 제시했는가 하면, 〈또다른 고향〉에서는 상황의식에 따른 자아성찰과 행동을 위한 결단을 내비치고 있다. 〈간〉에서는 구토지설(龜兎之說)과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연결시켜 고통스러운 현실과 맞서 유혹과 억압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일본 유학중에 쓴 〈쉽게 씌어진 시〉는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과 고독을 토로하고 시대의 어둠에 대해 시로 대응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또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로 시작되는 〈서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는 시로서, 특히 '하늘·바람·별'의 이미지가 서로 대응되어 그의 생애와 시의 전모를 단적으로 암시해준다.

그는 자전적이고 내성적인 시, 그리스도교 신앙에 바탕을 둔 실존적 윤리의식, 그리고 시대와의 갈등에 성실했던 민족의식을 나타낸 시를 썼으며, 이러한 주제를 고도의 상징과 은유적 기법으로 독특하게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한국시사에서 귀중하게 평가되고 있다. 정병욱이 그의 자필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소중히 간직해두었다가 1948년 정음사에서 출간한 이후, 시집으로 〈별 헤는 밤〉(1977)·〈윤동주시집〉(1984) 등이 나왔다.

윤동주 원고 원본
윤동주 원고 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