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지

유예지

다른 표기 언어 遊藝志

요약 조선 정조 때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지은 〈임원경제지 林園經濟志〉에 속한 권91~98의 책.

임원경제지 / 유예지 평시조
임원경제지 / 유예지 평시조

내용은 현금자보(絃琴字譜)·당금자보(唐琴字譜)·양금자보(洋琴字譜)·생황자보(笙簧字譜)로 크게 나누어 많은 곡을 실었다. 이 악보에 나오는 가곡을 살펴보면, 이 시기까지 중대엽이 쓰였고 삭대엽에는 많은 파생곡이 생겼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조(羽調)·계면조(界面調)에서 이수대엽 다음에 오는 중거(中擧)·평거(平擧)·두거(頭擧)가 없으며 삼수대엽(三數大葉) 다음에 오는 소용(騷聳)이 없다. 또 농(弄)·낙·편(編) 등은 갖추어져 있으나 얼롱·언락·편락·얼편 등의 곡은 아직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가곡의 끝을 장식하는 태평가(太平歌)도 없다.

영산회상은 현행 상영산(上靈山)으로 원형에 속하며, 세령산(細靈山)은 현행 중영산(中靈山), 영산회상 이층제지(二層除指)는 현행 세령산, 영산회상 삼층제지(三層除指)는 현행 가락덜이[加樂除只]에 해당한다. 각 곡은 4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예전의 만(慢)·중(中)·삭(數)의 형식을 살린 점이 특이하다. 보허사(步虛詞)는 현행 보허사, 대현환입(大絃還入)은 현행 미환입(尾還入)과 같다. 이렇게 보면 거문고 중심의 줄풍류가 오늘날의 음악처럼 체계가 잡힌 것은 〈유예지〉 때부터인 듯하다.

당금자보는 칠현금(七絃琴)의 합자보법(合字譜法)과 고금 금의 도해만 있고 악보는 없다. 양금자보에는 초보적이기는 하나 서양음악의 보표·음계·화성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이로써 〈유예지〉가 서양음악 악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시조악보는 현행 경제(京制:서울·경기의 시조창법) 평시조의 반주악보로서 가장 오래된 시조의 원형이다. 생황자보의 가곡에는 3가지 곡이 전하며 쌍성(雙聲), 즉 2음을 한번에 불어나가는데 그중 저음이 주선율(主旋律)이 되고 있다. 이 악보는 영조 이전과 고종 이후 음악의 중간에 위치하며 조선시대 음악의 변천과정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