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반란

유대인 반란

다른 표기 언어 Jewish Revolt

요약 유대 지방의 유대인들이 로마의 지배에 항거해 일으킨 2번의 대규모 봉기(66~70, 132~135)(→ 유대인 반란 [제1차], 유대인 반란 [제2차]).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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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유대인들은 소규모 집단을 이루어 산발적으로 저항운동을 폈으나 계속 잔혹하게 진압당한 끝에 제1차 유대인 반란을 일으켰다. 66년에 유대인들은 연합해 반란을 일으키고 로마인들을 예루살렘에서 몰아냈으며, 그해 가을 시리아의 속주 부총독 갈루스가 지휘하는 로마군을 베트호론 고갯길에서 격파한 뒤 혁명정부를 세워 유대 전역으로 영향력을 확산시켰다. 로마 황제 네로가 파견한 진압군 지휘관 베스파시아누스는 아들 티투스와 합세해 갈릴리로 진군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바로 이 갈릴리에서 유대군을 지휘했다. 요세푸스의 군대는 베스파시아누스의 군대와 맞서 싸우다가 도망쳤으며 야타파타 요새가 함락되자 요세푸스는 항복했고 로마 군대는 유대 전역을 유린했다. 70년 아브(Av) 월의 9번째 날(8. 29) 예루살렘의 함락으로 솔로몬 성전이 불탔으며 유대국은 멸망했다.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의 충돌은 그후로도 수십 년 동안 계속되었다. 마침내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예루살렘 지역에 로마 식민지를 세우고 유대인의 종교적 자유와 관습을 규제하려 한데다가 총독 틴니우스 루푸스의 실정(失政)으로 132년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유대인들 모두가 반란을 일으켰다.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으며 바르 코크바는 2번째 반란의 지도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가 이끄는 군대는 로마 장군 율리우스 세베루스의 교묘하고 잔혹한 전술을 당해낼 수 없었다. 예루살렘과 카이사레아 남쪽 해안의 요새 베타르가 함락됨으로써 반란은 135년에 진압되었다. 그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규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