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

위서

다른 표기 언어 Book of Wei , 魏書, 魏书

요약 중국 정사(正史)의 하나.
(병). Weioshu. (웨). Weioshu.

〈북위서 北魏書〉라고도 한다. 후위(後魏) 1대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12제기(帝紀)·92열전·10지(志)를 합하여 130권으로 되어 있다. 북제의 학자 위수(魏收)가 편찬했다. 북제의 문선제(文宣帝)는 551년(天保 2)에 칙령으로 위나라 역사를 편찬하도록 했으며, 평원왕(平原王) 고융지(高隆之)를 총감독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위수가 방연우(房延祐)·신원식(辛元植)·배앙지(裴昻之) 등의 사관을 이끌고 554년에 완성하여 바쳤다. 당시 세상에서는 선조에 관한 〈위서〉의 기술에 공평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공격하는 사람이 많았으며, 이 책을 '예사'(穢史:더러운 역사)라고도 불렀다. 문선제는 이 책을 비방하는 자를 벌함으로써 억압했는데, 효소제(孝昭帝)는 즉위 후 위수에게 개정하도록 명한 뒤 백성에게 공개하여 필사(筆寫)를 허락했다. 그뒤 무성제(武成帝)가 다시 위수에게 수정을 명했으며, 위수가 죽은 뒤에는 후주(後主)가 다시 사관에게 명하여 개정하도록 했다. 〈위서〉는 북조를 높이고 남조를 업신여겼으며, 북제를 옹호하고 북위·북주를 비판했다. 수·당 때는 이에 불만을 품은 위담(魏澹)·장태소(張太素)·배안시(裴安時)·원행충(元行沖) 등이 〈위사 魏史〉를 저술했는데, 일찍이 망실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위수의 〈위서〉도 1066년(嘉祐 6) 인종(仁宗)이 삼관비각(三館秘閣)에 교정을 명했는데, 틀리고 빠진 부분이 많이 발견되었을 뿐만 아니라 망실되어 불완전한 것이 30권에 이르렀다. 그때문에 유서(劉恕) 등의 사신(史臣)은 위담의 〈위사〉·〈북사 北史〉·〈고씨 소사 高氏小史〉·〈수문전어람 修文殿御覽〉과 장태소의 〈후위서〉 등을 토대로 수정·간행했다. 이 간본도 정강(靖康)의 난으로 중원이 혼란에 빠지면서 망실되었으나, 1144년(紹興 14) 메이 산[眉山]에서 다시 간행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송촉대자본(宋蜀大字本) 〈위서〉이다. 명대와 청대에 판각된 〈위서〉는 모두 이 메이 산 간본을 저본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