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력

원가력

다른 표기 언어 元嘉曆

요약 중국 남조 송(宋)나라의 하승천(何承天)이 만든 역법.

445년(원가 22)에 채택하여 이후 제(齊)나라를 거쳐 양(梁)나라 무제(武帝) 때 509년(천감 8)까지 65년 동안 사용되었다. 다만 제나라는 원가력을 건원력(建元曆)으로 고쳐 불렀다. 하승천은 그의 장인 서광(徐廣)이 칠요력(七曜曆)에 기록한 40년간의 관측자료와 자신이 직접 관측한 자료를 이용하여 다음과 같이 개혁하고자 했다.

첫째, 동지 때 태양의 위치를 월식 관측을 통해 두 21에서 두 17로 바꾸었다. 둘째, 동지의 일시를 측량에 의해 경초력(景初曆)보다 3일 남짓 빠르게 정했다. 셋째, 누각법을 고쳐 춘추분의 낮시간을 같게 만들었다. 넷째, 동지를 시작으로 한 다른 역법과 달리 우수(雨水)를 절기의 시작으로 정했고, 이때 태양의 위치를 실수(室宿)로 정했다. 끝으로 삭망월을 평균일수로 정하는 종래의 평삭법(平朔法)을 달 운동의 부등을 고려한 정삭법(定朔法)으로 고치려 했다. 그러나 정삭법의 도입은 많은 반대에 부딪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나머지 4가지만 채택되었다. 〈후주서 後周書〉 열전(列傳) 이역조(異域條)와 〈수서 隋書〉 열전 동이조(東夷條)에는 "백제는 송의 원가력을 사용했고 인월(寅月)을 연초로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백제에서도 원가력을 채택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니혼쇼키 日本書紀〉에 의하면 일본의 요청에 의해 554년 백제 역박사 왕보손(王保孫) 등이 일본에 갔으며, 602년 백제의 승려 관륵(觀勒)이 역서와 천문지리서를 가져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 원가력이 전해져 일본에서는 604년부터 사용되었다. 백제에서 원가력를 사용한 증거로 공주의 무령왕릉 지석을 들 수 있다. 여기에 씌어 있는 일자가 정확히 원가력의 방법과 일치한다. 원가력은 608회귀년과 7,520삭망월을 모두 22만 2,070일로 정했다. 즉 1회귀년은 365.24671일이 되고, 1삭망월은 29.530585일에 해당한다. 608회귀년과 7,520삭망월이 같다는 것은 바로 19년 7윤법을 사용했음을 의미한다. 원가력은 〈송서 宋書〉에 전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