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륵

우륵

다른 표기 언어 于勒
요약 테이블
출생 미상
사망 미상
국적 신라, 한국

요약 신라 진흥왕 때의 악사.

우륵(于勒)의 기념탑
우륵(于勒)의 기념탑

가야금의 명인으로 6세기 중엽에 활동했다. 가야국(加耶國)의 가실왕(嘉實王)이 당나라 악기를 보고 가야금(加耶琴)을 만든 후, 여러 나라의 방언이 각기 다르니 성음을 어찌 일정하게 할 것인가 하며 성열현(省熱縣) 사람인 그에게 12곡을 짓게 했다고 한다. 그후 가야국이 어지러워져 우륵이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 진흥왕에게 투항하니, 왕이 받아들여 국원(國原 : 지금의 충주)에 편히 거처하게 하고 대나마 법지(法知)·계고(階古)와 대사 만덕(萬德)을 보내 전수하게 했다.

세 사람이 11곡을 전해받고 서로 말하길 "이것은 번다(繁多)하고 음란하여, 우아하고 바른 것이라고 할 수 없다"며 그것을 요약하여 5곡을 만들었다. 우륵이 처음에는 화를 내다가, 그 5곡의 음조를 듣고는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기를 "즐겁고도 방탕하지 않으며, 애절하면서도 슬프지 않으니 바르다고 할 만하다. 왕의 앞에서 연주하라"고 했다.

우륵이 지은 12곡은 〈하가라도 下加羅都〉·〈상가라도 上加羅都〉·〈보기 寶伎〉·〈달기 達己〉·〈사물 思勿〉·〈물혜 勿慧〉·〈하기물 下奇物〉·〈사자기 師子伎〉·〈거열 居烈〉·〈사팔혜 沙八兮〉·〈이사 爾赦〉·〈상기물 上奇物〉 등이었는데, 대부분의 곡명이 그때의 군현명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그 지방 민요의 성격을 가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