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시게루

요시다 시게루

다른 표기 언어 Yoshida Shigeru , 吉田茂
요약 테이블
출생 1878. 9. 22, 도쿄[東京]
사망 1967. 10. 20, 오이소[大磯]
국적 일본

요약 제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군 점령하에서 일본이 새로운 민주주의 제도를 건설하려고 노력하던 격동기에 여러 차례 총리를 역임했다.
1906년 도쿄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외무성에 들어가 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 공사, 외무차관으로 근무했다. 1936년 외무상에 임명되었으나 군부의 반대에 부딪쳐 영국 대사로 나가 1939년까지 근무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 일본의 조기 항복을 위해 노력하다가 1945년 6월 체포되었다. 그해 9월 연합군이 일본을 점령한 후에 석방되었으며 항복 후에 구성된 시데하라 기주로 내각에서 외무상으로 일했다. 자유당 총재인 하토야마 이치로가 연합군에 의해 공직에서 추방되자 요시다는 당권을 장악하고 1946년 5월 22일 총리직을 승계했다.
사회당 총재 가타야마 데쓰가 1947년과 1948년에 내각을 이끌었고 좌파인 아시다 히토시도 1948년 잠시 총리직을 맡았지만, 1946~54년 대부분의 기간에 요시다는 5차례나 조각했다. 그는 개인적인 거대한 계보를 거느리고 거의 전제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으며 전후의 절박한 복구기에 일본의 안정을 확보했다. 그는 일본에 전쟁 전의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 주었으며, 미국 및 서유럽과 전후 협력의 길을 터놓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군 점령하에서 일본이 새로운 민주주의 제도를 건설하려고 노력하던 격동기에 여러 차례 총리를 역임했다.

1906년 도쿄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외무성에 들어갔다. 1928년 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 공사로 임명되었고, 1928~30년 외무차관으로 근무했다. 1936년 외무상에 임명되었으나 군부의 반대에 부딪쳐 영국 대사로 나가 1939년까지 근무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 일본의 조기 항복을 위해 노력하다가 1945년 6월 체포되었다. 그해 9월 연합군이 일본을 점령한 후에 석방되었으며 항복 후에 구성된 시데하라 기주로[幣原喜重郞] 내각에서 외무상으로 일했다. 자유당 총재인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가 연합군에 의해 공직에서 추방되자 요시다는 당권을 장악하고 1946년 5월 22일 총리직을 승계했다.

사회당 총재 가타야마 데쓰[片山哲]가 1947년과 1948년에 내각을 이끌었고 좌파인 아시다 히토시[芦田均]도 1948년 잠시 총리직을 맡았지만, 1946~54년 대부분의 기간에 요시다는 5차례나 조각(組閣)했다. 그는 개인적인 거대한 계보를 거느리고 거의 전제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으며 전후의 절박한 복구기에 일본의 안정을 확보했다. 그는 일본에 전쟁 전의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 주었으며, 미국 및 서유럽과 전후 협력의 길을 터놓았다.

1951년에는 강화조약과 미·일 안전보장조약에 조인했다. 1951년 연합군측의 공직추방에서 해제된 하토야마 이치로는 1954년 자유당 총재경선에서 요시다에게 도전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2개의 보수당이 1955년 하토야마를 총재로 추대하고 자유민주당으로 통합되자, 요시다는 정계에서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