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

요세

다른 표기 언어 了世
요약 테이블
출생 1163(의종 17)
사망 1245(고종 32)
국적 고려, 한국

요약 고려의 승려.

속성은 서(徐). 자는 안빈(安貧). 아버지는 신번현(新繁縣) 호장 필중(必中)이다. 1174년(명종 4) 천락사(天樂寺)에 출가하여 균정(均定)에게 천태교관(天台敎觀)을 수학했다. 1185년 승선(僧選)에 올랐다. 1198년(신종 1) 봄에 천태종 사찰인 개경의 고봉사(高峰寺)에서 법회를 열었을 때, 그 분위기에 크게 실망하고, 그해 가을 동지 10여 명과 더불어 명산을 순례하다가 장연사(長淵寺)에서 법회를 열고 설법했다. 이때 지눌(知訥)이 공산의 불갑사(佛岬寺)에 있으면서 참선하기를 권하자, 곧 가서 법우가 되었다. 그뒤 지눌이 순천 송광산으로 정혜사(定慧社)를 옮겨 가는 길에 남원 귀정사(歸正寺)의 주지 현각(玄恪)의 청으로 귀정사에 머물렀다. 1208년(희종 4) 영암 월생산 약사란야에 있으면서 수선(修禪)에서 천태교관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묘종(妙宗)을 즐겨 강의했으며, 실천행으로 수참(修懺)을 강조했다. 그뒤 만덕산으로 주거를 옮겨 1216년(고종 3) 백련사를 조직했다. 이는 탐진(耽津 : 강진)의 토호로 추정되는 최표(崔彪)·최홍(崔弘)·이인천(李仁闡) 등의 지원에 의해 결성된 것이다. 1221년 남원태수 복장한(卜章漢)의 요청으로 남원에 제2의 백련사를 설치하기도 했다. 그후 백련사에서 1232년 공식적으로 보현도량(普賢道場)을 설치했는데, 이는 그해의 강화천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1236년 제자인 천책(天頙)이 〈백련결사문〉을 찬술·공포했다. 1237년 고종으로부터 선사(禪師)의 직함과 함께 세찬(歲饌)을 받았다. 1240년 〈계환해묘법연화경 戒環解妙法蓮華經〉을 보현도량에서 조판하도록 했다. 이로 보아 보현도량과 최씨정권 간에 서로 유대를 맺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245년 천인(天因)에게 백련사를 맡기고, 그해 7월 입적했다. 저서로는 〈삼대부절요 三大部節要〉가 있다. 시호는 원묘국사(圓妙國師)이며, 탑호는 중진(中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