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를레앙

오를레앙

다른 표기 언어 Orleans
요약 테이블
위치 프랑스 중북부 루아레 주, 루아르 강 연변
인구 115,990명 (2020년 추계)
면적 27.48㎢
언어 프랑스어
대륙 유럽
국가 프랑스

요약 프랑스 중북부 상트르 지방의 중심지이자 루아레 주의 주도.

오를레앙(Orleans)
오를레앙(Orleans)

파리 남서쪽 보스 평야 가장자리의 비옥한 계곡에 루아르 강을 끼고 자리잡고 있다. BC 52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정복당했으며, 현재 이름의 기원인 로마 이름 아우렐리아눔으로 불렸다. 800~814년 샤를마뉴 황제의 통치를 받았을 때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10~11세기에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백년전쟁(1337~1453)중 1429년에 7개월 동안 잉글랜드인들에게 포위되었던 이 도시는 프랑스의 영웅인 오를레앙의 소녀 잔 다르크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해방되었으며, 이 승리를 축하하는 기념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다(→ 오를레앙 포위전).

16세기 종교 전쟁중에는 위그노교도(신교도)의 중심지였으나, 1572년 약 1,000명의 신교도들이 살해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사건 이후 가톨릭교도들이 주도권을 장악했다. 프로이센인들이 오랫동안 이 곳을 포위했다가 1870년 마침내 점령에 성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 극심한 폭격을 당하여 잔 다르크 박물관과 생폴 교회를 비롯한 역사적·예술적으로 귀중한 많은 건축물들이 파괴되었다.

이 도시는 루아르 강을 경계로 크고 작은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채소 유통의 중심지인 생마르소 구역이 작은 쪽이며 남쪽에 위치한다. 한편 도시의 대부분 지역은 루아르 강 북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쾌적한 넓은 대로들과 강변 부두 등으로 둘러싸였던 옛 시가지는 제2차 세계대전중 대부분 파괴되었는데 현대적 교통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점을 고려하면서도 전반적으로는 옛 18세기의 시가지 형태로 재건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 대로 너머의 교외로 빠지는 간선도로를 따라 새로운 구역이 건설되었다.

오를레앙 시는 현대 도로망의 중심지이며 시 바로 외곽에 프랑스의 주요 철도 교차점 가운데 하나인 레조브레가 있다. 1305년에 설립되었던 대학교는 프랑스 혁명 때 폐쇄되었으나 1962년 라수르스(루아르 강의 水源)에 새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예로부터 시장용 채소재배 및 원예의 중심지이며, 특히 '오를레앙' 장미로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파리의 분산정책으로 인해 섬유, 식품가공(프랑스 식초 생산의 약 절반을 차지함)·기계류제조(자동차부품·농업장비) 등 새로운 공업들이 발전했다.

13세기에 세워지기 시작한 생트크루아 대성당은 1568년 신교도들에 의해 크게 파괴되었다. 프랑스의 왕이었던 앙리 4세(1589~1610 재위)가 재건을 위한 기금을 내어 17~19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다시 세워졌다. 18세기의 탑들은 제2차 세계대전중 손상되었으나 그후 복구되었다. 대성당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크기가 비슷하다. 돌과 벽돌로 지은 르네상스 양식의 시청사(1549~55)는 19세기에 복구·증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