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미도

오두미도

다른 표기 언어 Wu-tou-mi , 五斗米道 동의어 Wudoumi, Wutoumi, Five Pecks of Rice, 오두미교, 五斗米敎, 천사도, 天師道, 정일도, 正一道

요약 중국의 도교 교파 가운데 하나.
(병). Wudoumi. (웨). Wutoumi. (영). Five Pecks of Rice.

장릉
장릉

천사도(天師道)라고도 한다. 한대(漢代 : BC 206~AD 220) 말기에 발생하여 조정의 힘을 크게 약화시켰으며, 이후 2,000년 동안 중국 전역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한 민란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오두미도는 2세기초에 중국 도교의 창시자이며 초대 교주인 장릉(張陵)이 창시했다.

그는 본래 신앙치료사였는데, 신자들에게 치료비나 종교헌금의 명목으로 매년 쌀 5두를 내게 한 데에서 오두미도라는 이름이 생겼다. 그에게 붙여진 천사(天師)라는 존칭은 아들 장형(張衡), 손자 장로(張魯)에 의해 계승되었다. 장로 때 중국 중부지방에서는 농민들이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렸다. 그는 이곳에서 생긴 불만을 이용하여 독자적인 군대를 만들고, 새로운 독립국가를 세웠으며 여행자를 위한 여인숙을 만들고 범죄자를 관대하게 처분하여 교세의 확장을 꾀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른 도교 지도자인 장수(張修)와 결합했으며, 이 두 사람은 점차 세력을 키워 마침내 쓰촨[四川] 전역을 지배했다. 그러나 두 지도자 사이에 불화가 생겨 장로가 장수를 죽였다.

215년 장로는 한나라의 장군 조조(曹操)에게 항복했으며, 조조는 그에게 높은 직위를 주고 제후에 해당되는 봉토를 주었다.

5세기초 북위의 도사 구겸지는 유가의 예법을 중심으로 오두미도를 개조하여 북천사도(北天師道)를 세웠고, 남조 때의 육수정(陸修靜)은 도교 서적을 정리하고 불교의식을 흡수하여 남천사도(南天師道)를 세웠다. 수·당대(隋唐代)를 거치면서 남·북의 천사도가 합쳐졌다. 그후 천사도는 도교의 상청파(上淸派)·영보파(靈寶派)·정명파(淨明派) 등과 점차 통합되어 정일도(正一道)로 불렸다.

한국의 오두미도

중국으로부터 한국에 언제 어떻게 전해졌는지 기록이 적어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일부 기록에 의하면 7세기 무렵 고구려인에 의해 성행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고려본기〉를 인용하여 고구려말인 중국 무덕·정관 연간(618~649)에 국인이 오두미도를 다투어 신봉하니, 당나라 고조가 도사를 시켜 천존상을 보내고 도덕경을 강연하게 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또 도교에 관한 강연을 624년(영류왕 7) 왕이 국인과 함께 들었다고 하며, 보장왕 때에는 당시의 권력자였던 연개소문에 의해 육성되었다. 이렇듯 고구려 말기 사회가 혼란한 틈을 타서 도교의 일종이었던 오두미도가 성행한 것은 사실이나 구체적인 전파 내용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