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선거법 개정안

영국선거법 개정안

다른 표기 언어 Reform Bill , 英國選擧法改正案

요약 영국 하원의원의 유권자수를 늘림으로써 의회가 합리적으로 국민을 대표할 수 있게 만든 법안들.

1832, 1867, 1884~85년의 3차례에 걸쳐 법률로 제정되었다. 제1차 개정안은 주로 귀족과 젠트리가 지배하던 소도시 선거구의 선거권을 조정해 인구가 밀집한 산업도시로 배분하기 위한 것이었고, 제2·3차 개정안은 상층 유산계급뿐만 아니라 가난하지만 더 많은 인구수를 차지하는 국민들에게도 선거권을 확대하여 의회가 더욱 민주적으로 국민을 대변하도록 한 것이었다.

제1차 개정안은 전통적으로 선거권을 행사해온 농촌지역과 잉글랜드 신흥공업지대의 급성장하는 도시들 사이에 대표자수에서 현저한 불평등이 있다는 점 때문에 주로 제기되었다. 예를 들면 버밍엄이나 맨체스터 같은 대규모 산업 중심지를 대표하는 의원은 없는 반면, 사실상 주민이 거의 없는 농촌지역의 수많은 이른바 '부패 선거구'라든지, 강력한 지주나 귀족 한 사람이 선거 결과를 완전히 좌우할 수 있는 '호주머니 선거구'에서는 계속 의원이 배출되었다. 인구가 적은 콘월 주(州)는 44명의 의원을 내는 데 반해 인구가 10만 명이 넘는 런던 시는 단 4명의 의원밖에 못 내고 있었다.

제1차 개정안은 당시 총리인 그레이 백작 2세 찰스 그레이가 작성하고 1831년 3월 존 러셀이 하원에 상정했다. 하원에서는 1차 투표로 통과되었으나 상원에서는 부결되었다. 그해 10월에 수정안이 나와 하원에서 어려움 없이 통과되었으나 또다시 상원을 통과하지 못해 선거법 개정안을 지지하는 군중들의 소요를 불러일으켰다. 3번째 수정안마저 상원 통과에 실패하자 그레이는 1832년 5월 최후수단으로, 완고하기 짝이 없는 상원에서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에 충분한, 50명 이상의 자유당 상원의원을 지명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국왕 윌리엄 4세에게 요구했다.

국왕이 그것을 거부하고 이에 그레이가 총리직을 사임하겠다고 압력을 가하자 국왕은 웰링턴 공작에게 새 내각구성을 위임했다. 그러나 국민의 반대로 웰링턴이 내각구성에 실패하자 국왕은 그레이에게 굴복해 새로 상원의원을 지명할 권한을 그에게 주었다. 압력은 충분한 효과를 거두었다. 개정안은 상원을 통과해 1832년 6월 4일 법률로 제정되었다.

제1차 개정법은 의석수를 재분배하고 유권자의 자격을 변경하여 영국의 낡은 선거제도를 개혁했다. 잉글랜드 지역의 선거구 중 56개가 대표선출권을 잃었고 콘월 주의 의원 수는 13명으로 줄었다. 그리고 잉글랜드 지역에 42개의 새로운 선거구가 생기고 전체 유권자수가 21만 7,000명이나 증가했다. 유권자의 자격도 완화되어 처음으로 소(小)자산가들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이 개정안은 노동자 계급과 상당수의 중·하층을 선거에서 배제하고 있었지만, 정부 구성에 신흥 중산층의 몫을 어느 정도 허용해 자칫 혁명을 초래했을지도 모르는 정치적 소요를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1867년의 제2차 개정법은 대체로 토리당의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작품으로서 다수의 도시 노동자들에게 선거권을 주어 유권자수가 93만 8,000명으로 늘어났다. 1884~85년의 제3차 개정법은 농업노동자들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했으며 1885년의 선거구 재조정법(Redistribution Act)은 유권자 5만 명당 의원 1명을 선출하도록 하여 각 선거구의 대표선출권을 평등하게 만들었다. 이 2가지 법령으로 유권자수는 3배로 늘어났으며, 비록 여성은 제외되었지만 보통선거의 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