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노동당

영국노동당

다른 표기 언어 Labour Party , 英國勞動黨

요약 1900년 노동조합회의와 독립노동당이 제휴해 노동자대표 위원회를 설립했고, 1906년에 노동당으로 개명했다. 당세가 급속히 성장해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립내각에 참여했고, 1918년 하원 총선거에서 제2의 정당으로 떠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윈스턴 처칠의 연립내각에 노동당 출신 각료들이 입각한 1940년까지 노동당은 권력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1945년 국유화 및 재건 프로그램과 공공복지사업 확대를 공약으로 걸어 압승을 거두었으나 1951년 보수당에게 권력을 빼앗겼다. 이후 보수당과 번갈아 집권하는 시소게임을 하다 중도좌파 정책을 채택해 신노동당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신노동당의 강령과 고도의 정치선전 기법이 결합해 1997년 총선에서 419석의 의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며 다시 권력을 잡았다.

1900년에 노동조합회의와 독립노동당(1893 창당)이 제휴하여 노동자대표 위원회를 설립했고, 1906년에 노동당으로 개명했다. 당세가 급속히 성장하여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립내각에 참여했고, 1918년 하원 총선거에서 제2의 정당으로 떠올라 전후까지 공식적인 야당으로 활동했다.

1924년 1월 당수인 램지 맥도널드는 자유당의 지지를 얻어 최초의 노동당 내각을 이끌었으나, 그 해에 실각했다. 1929년 선거에서 노동당은 자유당의 후원으로 내각을 구성하기에 충분한 득표를 했다. 맥도널드의 내각은 1931년까지 지속되었으나, 경제정책에 대한 의견 차이로 맥도널드는 그 해 사임했고, 자유당과 보수당은 연립내각을 구성했다. 노동당은 다음 선거에서 참패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윈스턴 처칠의 연립내각에 노동당 출신 각료들이 입각한 1940년까지 노동당은 권력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1945년 노동당은 국유화 및 재건 프로그램과 공공복지사업 확대를 선거공약으로 하여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1950년 하원 선거에서는 5표의 근소한 차로 다수당의 명맥을 유지하다가, 1951년에는 보수당에게 권력을 빼앗겼다.

램지 맥도널드(James Ramsay MacDonald)
램지 맥도널드(James Ramsay MacDonald)

1950년대에는 당의 전통적인 사회주의적 접근법을 풍요로운 사회에 적응시킬 지의 여부와, 또 어떻게 적응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 특히 산업의 국유화 문제로 노동당은 분열하기 시작했다. 베바나이츠는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의 확대와 대미 의존적 경제의 개선을 주장했다. 반면에 수정주의자들은 산업의 국유화 공약을 포기해야 된다는 주장을 폈다. 1964년에 노동당은 다시 권력을 잡게 되었고, 이때부터 경제적 불경기와 혼란기에 보수당과 번갈아 집권하는 시소 게임을 벌였다.

1979년 보수당에 참패한 후 노동당은 심각한 내분에 휩싸였다. 일부 대형 노조의 지원을 받은 당내 좌익은 국회의원 후보와 당수 선출에 있어 대중활동가들과 노동조합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내부 조직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에 반발하여 간부급 국회의원들과 그 지지자들이 1981년 노동당을 탈당하고 사회민주당을 창당했다. 1983년 총선에서 마이클 풋 노동당 당수는 산업국유화 확대실시, 핵무기의 일방적 폐기, 유럽 공동시장 탈퇴 등의 급진적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결과는 50여 년 만의 최악의 참패로 끝났다. 선거에서 패배한 후 노동당 당수는 마이클 풋에서 닐 키녹으로 바뀌고, 중도좌파가 당을 이끌어나갔다.

그후 1989년 10월에 열린 당대회에서 핵무기의 일방적 폐기정책을 포기하고 현실노선으로 수정했다. 그러나 1992년 4월 9일에 실시된 총선에서도 여전히 보수당에게 패배했다. 총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중도 좌파의 정책은 존 스미스(1992~94)와 토니 블레어(1994~)에 의해 계승되었다. 이들이 채택한 실용주의 정책과 조직개편으로 노동당은 과거의 급진성을 탈피하여 신노동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신노동당의 주요 정책으로는 1950년대 수정주의자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혼합경제를 강화하고, 유럽 연합(EU) 내에서 영국의 역할을 계속 수행하며, 산업국유화 정책을 포기하고, 제도와 사회정책 분야에서 전면적 개혁을 시행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신노동당의 강령과 고도의 정치 선전 기법이 결합하여 1997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419석의 의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며 권력을 다시 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