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탈퇴

연방탈퇴

다른 표기 언어 secession , 聯邦脫退

요약 미국 역사에서 1860~61년 11개 노예주(노예소유가 합법으로 인정된 주)가 미연방에서 탈퇴한 사건.

에이브러햄 링컨의 대통령 당선에 뒤따라 일어났으며 이로써 남북전쟁 발발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연방탈퇴는 미국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연방 해체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하나의 위협수단으로 행해졌다.

연방 탈퇴론자들은 기존 정부를 바꾸거나 폐지하고 새로운 정부를 세우는 데 대한 철학적 정당성을 독립선언서에서 구했다. 더 구체적으로 이들은 연방이 주(州)들간의 협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각 주들이 과거에 협정에 동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협정을 폐기할 수도 있다는 논리를 폈다. 매디슨과 제퍼슨은 연방탈퇴에 결코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1798년 버지니아와 켄터키 결의에서 주권(州權)과 협약에 관한 원칙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들의 정치적 반대파인 뉴잉글랜드 연방주의자들은 1814년 하트퍼드 회의에서 연방탈퇴를 고려하기도 했다.

1840년대에서 1860년에 이르는 동안 북부에서 노예제에 반대하는 감정이 커질 때마다 남부인들은 연방에서 이탈하겠다고 위협해오다가 1860년 대통령선거에서 노예제에 반대했던 링컨은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면 연방에서 탈퇴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1860년 20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특별협의회는 만장일치로 연방탈퇴안을 통과시켰다.

미시시피·플로리다·앨라배마·조지아·루이지애나가 1861년 1월 이 결정에 따랐고, 텍사스도 2월 1일 투표를 통해 연방을 탈퇴했는데 링컨이 취임하기 1개월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은 연방탈퇴 권리도, 연방을 이탈한 주에 대한 연방정부의 무력사용권도 부정했다. 링컨은 취임 후 1개월 동안 관망하다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턴 항에 있는 섬터 요새로 물자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1861년 4월 12일 남부연합군이 섬터 요새에 포격을 가함으로써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제 연방과 남부연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 남부의 버지니아·노스캐롤라이나·아칸소·테네시 주는 연방탈퇴에 표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