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당전서

여유당전서

다른 표기 언어 與猶堂全書

요약 여유당전서는 다산 정약용의 저술을 모두 정리한 문집으로, 여유당은 그의 당호이다.
1934-38년에 신조선사에서 외현손 김성진이 편집하고 정인보·안재홍이 교열에 참가해 활자본 154권 76책으로 간행되었다. 신조선사판 〈여유당전서〉를 저본으로 해서 1962년 문헌편찬위원회가 다산연보를 첨가해 〈정다산전서〉라는 제명으로 영인본을 냈고, 1970년엔 경인문화사가 〈여유당전서보유〉 5책을 추가해 영인본을 출간했다. 전서의 체제는 내용에 따라 7집으로 분류된다. 1집은 시문집, 2집은 사서·시경·상서·춘추 등에 대한 저술인 경집, 3집은 주로 상례에 관한 저술인 예집, 4집은 악집, 5집은 <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 등이 수록된 정법집, 6집은 지리집, 7집은 의학집이다.

여유당은 저자의 당호이다.

1934~38년에 신조선사(新朝鮮社)에서 외현손 김성진이 편집하고 정인보·안재홍이 교열에 참가해 활자본 154권 76책으로 간행되었다. 신조선사판 〈여유당전서〉를 저본으로 해서 1962년 문헌편찬위원회가 다산연보를 첨가해 〈정다산전서〉라는 제명으로 영인본을 냈고, 1970년엔 경인문화사가 〈여유당전서보유〉 5책을 추가해 영인본을 출간했다. 전서의 체제는 내용에 따라 7집으로 분류되었는데, 1집은 시문집으로 25권 12책, 2집은 경집(經集)으로 48권 24책, 3집은 예집(禮集)으로 24권 12책, 4집은 악집(樂集)으로 4권 2책, 5집은 정법집(政法集)으로 39권 19책, 6집은 지리집으로 8권 4책, 7집은 의학집으로 6권 3책이다.

시문집에 실린 그의 시는 1,312수로 14세 때의 〈회동악 懷東嶽〉에서 유배 후의 생활을 읊은 시까지 모두 망라하는데 현실비판에 입각한 사실성이 뛰어나다.

작품으로 연천지방을 순행하면서 농민의 참상을 표현한 〈봉지염찰도적성촌사작 奉旨廉察到積城村舍作〉, 그의 정치이념을 노래한 〈기민시 飢民詩〉, 민폐 제거의 정책을 논의한 〈맹화요신성언공주창곡위폐정민불료생 孟華堯臣盛言公州倉穀爲弊政民不聊生〉 등 외에, 〈충식송 蟲食松〉·〈증문 憎蚊〉·〈용산리 龍山吏〉·〈엽호행 獵虎行〉 등이 있다.

책문(策問)으로 〈지리책〉·〈십삼경책 十三經策〉·〈인재책 人材策〉·〈논어책 論語策〉·〈맹자책 孟子策〉·〈조운책 漕運策〉·〈농책 農策〉·〈문율도량형 問律度量衡〉·〈문전폐 問錢幣〉·〈문유 問儒〉 등이, 의소로는 인재등용에 있어 지역차별과 당색의 타파를 주장한 〈통색의 通塞議〉, 신포징수제도의 혁신을 논한 〈신포의 身布議〉, 환상제도의 개선에 관한 〈환향의 還餉議〉, 통화개주와 금은의 해외유출방지를 논의한 〈주폐의 鑄幣議〉, 도량형을 통일하자는 〈도량형의 度量衡議〉, 호구조사의 철저와 조사표 작성을 주장한 〈호적의 戶籍議〉, 농기구의 개량에 의한 생산량 제고를 건의한 〈응지논농정소 應旨論農政疏〉 등이 있다.

원(原)에는 〈원교 原敎〉·〈원정 原政〉·〈원사 原赦〉 등이 있는데 〈원목 原牧〉에서는 백성들의 필요와 자발적인 추대에 의해서 수령·국왕·황제 등이 발생했다고 함으로써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유사한 사상을 전개했다.

설에는 〈애체출화도설 靉霴出火圖說〉·〈외단활차설 桅端滑車說〉·〈지구도설 地毬圖說〉·〈종두설 種痘說〉·〈기중도설 起重圖說〉 등이 있는데 당시 서양에서 받아들인 과학지식들이 담겨 있다. 논(論)의 기예론에서 그는 인간과 동물이 구별되는 것은 인륜(五倫)만이 아니라 기술을 습득하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는 당시의 낙후된 우리의 현실을 개탄하고 중국에서 기술문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농업·방직·의료·군사 부문에서의 기술을 특히 강조했다.

〈속유론 俗儒論〉에서는 "참 선비의 학문은 본디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며 오랑캐를 물리치고 재용(財用)을 넉넉히 하는 데 있다. 어찌 글귀나 찾고 글자를 해석하는 것뿐이겠는가"라고 속유(俗儒)들을 논박했다.

〈오학론 五學論〉에서는 "성리학은 도(道)를 알고 자신을 인식하며 실천에 진력하는 것"이라며 비실용적 관념의 유희를 일삼는 성리학을 통박했다. 〈풍수론〉에서는 풍수지리설의 허구를 지적했으며, 〈향리론〉에서는 농민을 수탈하는 향리들을 굶주린 호랑이와 솔개에 비유하면서 임용제도의 쇄신을 역설했다.

〈상론 相論〉에서 그는 상(相 : 얼굴)에 의해서 빈부귀천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직업이 분화되어 습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상이 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탕론 湯論〉에서는 천자도 상향식 간접선거제도를 통해서 뽑으며 뽑힌 사람이 적당하지 않을 때는 사퇴시키고 다시 선출해야 한다고 했으며 이것은 마을의 이장을 개선하는 것과 같다고 함으로써 그의 주권재민적 정치이념을 뚜렷이 했다. 〈감사론 監司論〉에서는 지방관리들을 공인된 도적이라고 규정하고 이서(夷署)들을 소도(小盜), 감사를 대도(大盜)라고 부르며 "대도가 없어지지 않으면 백성들은 모두 죽음을 당할 것이다"라고 결론짓고 있다.

〈전론田論〉에서는 이상적인 전제개혁안으로 여전법(閭田法)을 제의했는데 내용을 ① 농사 짓는 사람만이 토지를 소유해야 함(耕者有田), ② 토지는 공유함(土地公有), ③ 토지의 경작은 공동으로 함(共同耕作), ④ 생산물의 공동수확(共同收穫), ⑤ 노동량에 따른 수확물의 분배 등으로 다분히 사회주의의 이상에 근접한다.

이외에 서자의 관직제한 철폐를 전개한 〈서얼론 庶孼論〉, 군기(軍器)정비에 의한 국방력강화를 담은 〈군기론〉,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한 후 나라가 망한 이유를 설명한 〈고구려론〉 등이 있다.

변(辨)에는 고증적인 내용이 많은데 〈고요집고수변 皐陶執瞽瞍辨〉·〈계림옥적변 鷄林玉笛辨〉·〈송광사고발변 松廣寺古鉢辨〉 등이 있다.

〈서암강학기 西巖講學記〉는 1795년 온양 서암의 봉곡사(鳳谷寺)에서 목제(木齊) 이삼환(李森煥) 등에게 이익의 질서학(疾書學)을 강론한 기록이다. 〈도산사숙록 陶山私淑錄〉은 〈퇴계집〉에 있는 서(書)를 보고 자신의 생각을 남겨둔 것이며 〈산수심원기 汕水尋源記〉는 산수(汕水)의 근원을 밝힌 글이다.

〈문헌비고간오〉는 〈문헌비고〉를 수정·윤색한 것이며 〈이담속찬 耳談續纂〉은 392개의 속담을 모은 책이다. 〈아언각비 雅言覺非〉는 379개 용어의 어원과 쓰임이 모호한 것을 지적하여 그 정오(正誤)를 적은 책으로 그 예는 다음과 같다.

양반은 동서 2반을 말하는 것으로 고려 때 문반과 호반(虎班)을 명칭하는 것이다. 즉 사대부의 당상관·당하관을 양반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귀족이면 아무 관직이 없어도 양반이라고 지칭하니 이것은 부당하다. 〈소학주관 小學珠串〉은 1자(一字)에서 28자의 글을 경전에서 끌어다 3권 300조에 실었다.

경집에는 〈대학〉·〈중용〉·〈맹자〉·〈논어〉·〈시경〉·〈상서 尙書〉·〈춘추〉·〈주역〉 등 4서 4경으로 되어 있다.

그는 성(性)론에서 모든 인간이 똑같이 기질의 성과 도의(道義)의 성을 타고 나지만 후천적인 태도에 따라 군자·소인의 차이가 나타난다고 했다. 윤리관에서는 인간의 주체적 실천의 노력을 중시해서 〈맹자요의(要義)〉에서는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비로서 인(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전에는 인이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한퇴지의 성삼품설(性三品說)을 비판했다.

〈논어고금주(注)〉에서는 논어에 관한 고금의 주소를 수집하고 제경(諸經)의 인증(引證)을 덧붙여 자신의 견해를 밝혔으며 〈중용자잠 中庸自箴〉에서는 중용의 원문에다 주를 달고 자신의 잠을 덧붙였다.

〈대학강의〉는 일찍이 초계신(抄啓臣)으로 희정당(熙政堂)에서 강의한 것을 기록한 것이며, 〈대학공의(公議)〉는 대학에 제설(諸說)과 인증, 답난(答難)을 붙여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이다.

〈상서고훈 尙書古訓〉은 서경의 해설서로 〈상서지원록(知遠錄)〉과 자매편이다. 상서의 각 편을 장으로 나누고, 나누어진 장에 따라서 원문을 쓰고 그것을 주석한 제가의 설로 고정(考訂)하고 인증하며 그 끝에 자신의 자설(自說)인 안설(案說)을 붙였다.

〈시경강의〉는 정조가 시경에서 800여 조에 걸쳐 조문한 것에 대해 강술한 내용인데 어문(御問)에 대해 신대왈(臣對曰)의 대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춘추고징 春秋考徵〉은 춘추경문과 삼전(三傳)에서 길례(吉禮)와 흉례(凶禮)에 관한 기사를 뽑아 유별로 나누어 고징하고 끝에 자신의 견해를 밝힌 책이다. 〈역학서언(緖言)〉은 중국의 한당(漢唐) 이래 당시까지의 여러 역설(易說)을 비판·평가한 책으로 다산은 주역을 복서학적인 면보다 순수(順受) 천명학으로 해석하면서 개과천선지서라고 칭했다.

〈주역사전(四箋)〉은 주역의 4가지 법인 추이(推移), 물상(物象), 호체(互體), 효변(爻變)을 주희의 〈주역본의〉에 근거하여 풀이한 책으로 4회에 걸쳐 개고한 역작이다.

예집에는 〈상례사전 喪禮四箋〉·〈상례외편(外編)〉·〈상례절요〉·〈제례고정 祭禮考定〉·〈가례작의 嘉禮酌儀〉·〈예의문답〉·〈풍수집의(集義)〉 등이 있는데 주로 상례에 관한 저술이 가장 많으며 주정설적(主情說的) 예론에 근거하고 있다. 〈상례절요〉에서 저자는 고례(古禮)를 주로 하고 다시 〈주자가례〉와 우리의 속례를 들어 설명했는데 시졸(始卒)부터 소렴·대렴·소상·대상 등을 다루고 상중에 해야 할 것과 하지 말 것을 예를 들어 설명했다.

악집에는 〈악서고존 樂書孤存〉 4편이 있는데 모든 악기 및 악지(樂志)와 성률(聲律)의 제작·이동·연혁·오류 등에 대해 전적을 이용하여 고사(考査), 변정(辨訂)한 것이다.

정법집에는 〈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 등이 수록되어 있다. 지리집에는 〈강역고〉·〈대동수경〉이 실려 있는데 〈대동수경〉은 대수(帶水 : 임진강) 이남은 다루지 않고 있다. 집은 의학집으로 마진(麻疹)을 다룬 〈마과회통〉과 부록 〈의령 醫零〉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