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테아

에테아

다른 표기 언어 ETA

요약 바스크족 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해 폭력투쟁방식을 채택한 스페인의 바스크족 분리주의 조직.
정식 명칭은 Euzkadi Ta Azkatasuna.

바스크어로 '바스크족의 고향과 자유'라는 뜻이다. ETA는 1894년에 결성된 바스크 민족당(Partido Nacionalista Vasco/PNV)에서 파생한 단체이다.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파시스트 정권하에서 PNV는 파리에 망명본부를 세우고, 스페인 내에서는 불법적으로 지하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며 활동했다. 바스크 민족당이 무력투쟁을 단호하게 거부하자 이에 반발한 젊은 당원들이 1959년에 당을 뛰쳐나가 ETA를 결성했다. 그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새로운 조직은 점점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혁명적 사회주의를 목표로 삼는 집단으로 발전했다. 1966년에 열린 ETA의 제5차 총회에서 이념을 달리하는 두 파벌로 나누어졌다. 민족주의파인 ETA-V는 바스크족 자치라는 전통적인 목표를 고수한 반면 이념주의파인 ETA-VI는 바스크족 독립운동에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도입하고 파괴와 암살(1968년부터 시도함)을 투쟁방식으로 채택했다. 프랑코 정권은 바스크 지방에서 가혹한 보복과 탄압을 자행했고 경찰은 임의체포·구타·고문을 서슴지 않았다. 1969~70년에 이르자 주요지도자들이 경찰에 검거되어 부르고스 시에서 군사재판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새 지도자들이 등장한 1970년대와 1980년대에도 ETA 내의 파벌주의는 계속되었다. 조직 안에는 둘 또는 셋 이상의 파벌이 있어서 어느 파벌이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폭력투쟁노선과 정치활동노선을 번갈아 채택했다. 1975년에 프랑코가 죽은 뒤 스페인의 민주정부는 바스크 지방에 지방자치제도를 확립하고 테러리즘을 비난하는 ETA 대원들을 사면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프랑코가 죽은 뒤 10년 동안 ETA가 폭탄과 암살로 죽인 사람의 수는 프랑코가 철권으로 탄압했던 시절보다 무려 10배나 늘어났다. ETA는 초기에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이탈리아의 붉은여단,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등 외국의 다양한 해방운동단체와 연계를 유지했다. ETA 대원은 예멘(특히 아덴 지역)·알제리·리비아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나중에 가장 강력한 파벌로 살아남은 ETA 군대(ETA-M)는 거의 모든 국제관계를 무시하는 경향을 띠었다. ETA는 차츰 자급자족하는 단체가 되어 강도·납치 및 기업가들한테서 빼앗는 '혁명세'로 재정을 충당하고, 8~10명의 남녀 책임자가 감독하는 세포망으로 조직을 유지했다. ETA는 이후 통일인민당(Herri Batasuna/HB)과 바스크 좌익당(Euzkadiko Ezkerra/EE) 같은 정당과도 선거동맹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