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식스

여왕 엘리자베스 1세(1558~1603 재위)와의 관계로 유명하다. 젊은 나이에 의붓 아버지인 레스터 백작 로버트 더들리의 작위를 계승했으며 나이 많은 여왕의 총애를 받았다. 수년 동안 여왕은 그의 경솔함과 무례함을 참았으나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으로 끝났다.

여왕과는 외척 관계이며 9세 때 아버지 에식스 백작 1세 월터 데버루의 작위를 물려받았고 1586년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스페인과의 싸움에서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듬해 거마관리관(왕실 제3의 고관)이 되었으나 이때부터 벌써 여왕을 몇 번이나 화나게 하여 가까스로 그녀의 총애를 유지하고 있었다. 여왕의 뜻을 거역하고 1589년 리스본 공격 작전에 참여했고 1590년 시인 필립 시드니 경의 미망인 프랜시스 월싱엄과 비밀리에 결혼했다.

1591~92년에는 프랑스에서 프로테스탄트인 앙리 4세가 가톨릭 진영과 싸우는 것을 도우며 영국군을 지휘했다. 그뒤 4년 동안 영국에 머물며 외교분야에서 오랫동안 주도권을 잡고 있던 세실가에 도전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는 외교문제 전문가가 되었으며 1593년 추밀고문관이 되었고 1594년에는 의사 로데리고 로페스의 여왕 살해음모 혐의사실을 적발했다.

1596년 스페인에 대한 공세 재개로 군사 활동의 새로운 기회를 맞이한 그는 부대 지휘관이 되어 6월 22일 카디스를 점령·약탈한 작전에 참가했다. 결정적이지는 않았지만 극적인 전투수행으로 명성이 절정에 달한 그는 스페인에 대해 더욱 강력한 전략을 세울 것을 주장했으나 1597년 그가 이끄는 부대는 아소레스에서 스페인 보물선단을 나포하는 데 실패했다. 이듬해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자 세실가와의 대립 관계가 첨예해졌으며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반란이 점점 심각한 지경에 이르자 임용과 전략을 둘러싸고 여왕과 심한 이견을 보였다.

이무렵 에식스의 끈질긴 야망에 대해 점점 경각심을 더해가던 여왕은 그가 '휘어잡을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녀는 싸우다가 등을 돌린 에식스의 뺨을 내려친 적도 있었다. 1599년 아일랜드 총독으로 파견된 그는 이곳에서 반란 진압에 실패하고 불리한 조약을 체결한 뒤 갑자기 총독직을 버려둔 채 여왕에게 직접 해명하기 위해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이에 대한 여왕의 대응은 관직 박탈이었다(1600. 6). 그는 정치적인 파멸과 경제적인 파산 상태에서 자택에 구금된 뒤 200~300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1601년 2월 8일 런던에서 대중봉기를 일으키려 했으나 계획이 치밀하지 못해 실패하여 투항했다.

그는 반역 혐의로 런던 탑에서 처형당했다.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이 재판 검찰관의 한 사람이었는데 베이컨의 승진을 위해 지난날 정부에 부단한 압력을 가한 인물이 바로 에식스였다. 에식스에 관한 전기로 로버트 레이시가 쓴 〈에식스 백작 로버트 Robert, Earl of Essex〉(1970), G. B. 해리슨의 〈에식스 백작 로버트 데버루의 생애와 죽음 Life and Death of Robert Devereux, Earl of Essex〉(1937)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