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2세

에드워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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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284. 4. 25, 웨일스 카나번셔 카나번
사망 1327. 9, 글로스터셔 버클리
국적 잉글랜드, 영국

요약 잉글랜드의 왕(1307~27 재위).
별칭은 카나번의 에드워드(Edward of Caernarvon).

에드워드 2세(Edward II)
에드워드 2세(Edward II)

강력한 권한을 가진 귀족들에 대항해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려고 오랫동안 노력했으나 능력이 부족해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에드워드 1세의 넷째아들인 그는 부왕이 죽자(1307. 7. 7) 왕위에 오른 뒤 곧바로 에드워드 1세를 반대하던 이들을 최고의 관직에 앉혔다. 자신이 총애하는(아마도 그의 동성연애 상대였던 듯함) 천박한 피어스 개버스턴에게 콘월 백작작위를 내려 귀족들의 미움을 샀다.

1311년 21명의 귀족위원회는 문서를 제출해(후에 '칙령'으로 알려짐) 개버스턴을 몰아내고 재정과 인사 문제에 관한 왕권 축소를 요구했다. 에드워드는 이 요구를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개버스턴을 추방했다가 곧 돌아오도록 허용했다. 그 보복으로 귀족들은 개버스턴을 잡아다가 처형해버렸다(1312. 6).

그는 그 칙령을 무효로 하고 개버스턴의 원수를 갚기 위해 11년을 기다려야 했다. 한편 스코틀랜드 왕 로버트 1세 브루스는 잉글랜드의 속박에서 벗어나겠다고 계속 위협했다. 에드워드는 1314년 군대를 이끌고 스코틀랜드로 쳐들어갔으나 6월 24일 배넉번에서 브루스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다.

스코틀랜드는 단번에 사실상의 독립을 이룩했으며 에드워드는 그의 사촌 랭커스터의 토머스가 이끄는 귀족들의 처분을 바라는 신세가 되었다. 토머스는 1315년경 자신이야말로 잉글랜드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주장했으나 그의 위세는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것임이 드러났다. 1318년경 펨브로크 백작인 에이머 드 발랑스가 이끄는 중도파 귀족들이 토머스와 에드워드 사이에 중재 역할을 맡고 나섰는데 이때 에드워드는 더스펜서 부자를 새로이 총애하게 되었다. 에드워드가 웨일스를 차지하려는 아들 더스펜서의 야심을 지지하자 토머스는 더스펜서 부자를 추방해버렸다. 그러자 에드워드는 그들 부자를 위해 군사를 일으켜, 자체 내분으로 결속이 약화된 반대세력을 패배시키고 1322년 3월 요크셔의 버러브리지에서 토머스를 사로잡은 뒤 곧 처형했다.

마침내 귀족들의 간섭에서 벗어난 그는 칙령을 파기했다. 그러나 그가 더스펜서 부자에게 의존하는 것을 왕비인 이자벨라는 불쾌하게 여겼다. 이자벨라는 1325년 외교사절로 파리에 갔다가 에드워드를 반대하고 망명한 귀족 로저 모티머와 사랑하게 되었다.

1326년 9월 이자벨라는 로저와 함께 잉글랜드로 쳐들어와 더스펜서 부자를 처형하고 에드워드를 폐위한 뒤 아들을 에드워드 3세로 왕위에 오르게 했다(1327. 1). 에드워드 2세는 투옥되었다가 1327년 9월에 죽었는데 폭행으로 숨진 것으로 짐작된다. 그의 일대기는 힐다 존스턴의 〈카나번의 에드워드 Edward of Caernarvon〉(1946)에 자세히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