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

야고보

다른 표기 언어 Saint James
요약 테이블
출생 미상
사망 62경, 예루살렘

요약 ‘주의 동생 야고보’라고도 불린다. 사도 바울로에 따르면 그는 그리스도교 사도 중 한 사람이었지만 원래의 12사도에는 들지 않았다.
예수와 야고보의 관계에 대해 제시된 가설들로는 형제였다는 설, 이복형제였다는 설, 사촌간이었다는 설 등이 있다. 하지만 그가 예수의 공생애 기간에 예수를 따르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바울로에 따르면, 야고보가 나중에 회심한 것은 부활한 그리스도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후기 전승에 따르면 야고보는 '의인'이라고 불렸으며, 유대교 율법을 실행한 것으로 유명했다. 비록 율법에 대한 그의 신앙과 열성을 둘러싸고 여러 전설이 생기긴 했지만 후기 전승에서는 야고보의 경건함과 유대인, 유대계 그리스도교인의 호감이 강조되고 있다. 이 호감은 제사장들이 야고보를 돌로 쳐죽였을 때 보인 유대인의 분노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야고보(Saint James)
야고보(Saint James)

사도 바울로에 따르면 그는 그리스도교 사도 중 한 사람이었지만 원래의 12사도에는 들지 않는다. 베드로와 복음서의 저자인 요한과 함께 '교회의 기둥'이었다. 그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혼동이 있어 왔는데, 그것은 그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복음서들은 그가 예수의 4명의 동생 중 1명이라고 언급하지만(마르 6 : 3, 마태 13 : 55),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1장 19절이 야고보를 '주의 동생'이라고 지칭한 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예수와 야고보의 관계에 대해서 지금까지 제시된 가설들로는, 형제였다는 설(테르툴리아누스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견해), 이복형제였다는 설(오리게네스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견해) 또 사촌간이었다는 설(예로니모의 견해) 등이 있다. 야고보가 예수의 공생애 기간에 예수를 따르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바울로에 따르면, 야고보가 나중에 회심한 것은 부활한 그리스도가 나타났기 때문이다(Ⅰ고린 15 : 7). 바울로가 회심하고 3년이 지났을 때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로 활동했으며(갈라 1 : 18~19), 44년경 유대 왕 헤로데 아그리파 1세가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의 목을 베고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도망친 뒤에는 훨씬 더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사도 12 : 1~17). 야고보는 바울로의 이방인 선교를 다룬 예루살렘 공의회(사도 15 : 13)와 바울로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사도 21 : 18) 때 예루살렘 교회의 주요대변자였다. 후기 전승에 따르면 야고보는 '의인'이라고 불렸으며, 유대교 율법을 실행한 것으로 유명했다. 비록 그가 할례를 비롯한 유대교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유대계 그리스도교인을 반박하기는 했지만, 유대계 그리스도교인이 자기와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유대인의 관습과 신앙을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율법에 대한 그의 신앙과 열성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전설이 생겼는데, 이때문에 후기 전승에서는 야고보의 경건함과 유대인, 유대계 그리스도교인의 호감이 강조되고 있다. 이 호감은 제사장들이 야고보를 돌로 쳐죽게 했을 때 유대인이 보인 분노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에 따르면 그는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하며, 초기 그리스도교 저술가 성 헤제시포에 따르면 성전 탑에서 던져졌다고 한다. 〈신약성서〉에서는 예루살렘 초대 주교라는 직책이 언급되지 않지만, 초대 교회에서는 야고보를 예루살렘의 초대 주교라고 칭했다. 현대 학계는 윤리적 교훈을 담은 〈신약 성서〉 〈야고보의 편지〉가 그의 저작이라는 전승을 지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