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알렉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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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690. 2. 28(구력 2. 18), 모스크바
사망 1718. 7. 7(구력 6. 26),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적 러시아

요약 러시아의 차르 표트르 대제의 아들.
(영). Alexis. 정식 이름은 Alekkey Petrovich.

제위계승예정자였던 그는 표트르 대제를 폐위시키려 한 혐의로 기소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어머니 예브도키야가 1698년 강제로 수도원에 들어간 뒤, 어린 알렉세이는 숙모들 손에서 자랐으며 1702년부터는 가정교사 하인리히 폰 호이센 남작의 지도를 받았다.

1704년 나르바 포위전에 참가했고 대북방전쟁 때인 1707년 모스크바 요새화 작업을 지휘했으며, 1709년에는 작센의 드레스덴으로 유학을 떠났고,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조피 샤를로테와 결혼하는(1711. 10) 등 아버지에게 의무적으로 복종했지만 표트르 대제가 벌인 전쟁과 개혁사업에는 결코 열의를 보이지 않았고 점점 더 아버지에게 적의를 갖게 되었다. 표트르 대제의 2번째 아내 예카테리나가 아들을 낳음으로써(1715. 11. 8[구력 10. 28]) 알렉세이 외에도 남자 왕위계승자가 생기자 그는 왕위계승권 포기와 수도승이 되는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았다.

그후 건강이 나빠지고 심한 알코올 중독자가 된 알렉세이에게 표트르 대제가 덴마크 원정(1716. 8)에 함께 참여할 것을 명령하자 빈으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6세의 보호를 받았다. 표트르는 자신에 대항하는 국내외의 반대자들이 이런 상황을 악용해 알렉세이를 통치자로 떠받들지도 모른다고 우려해 알렉세이를 귀국시키려고 사절단을 파견했다. 사절단은 완전한 사면을 약속하며 알렉세이를 설득해 모스크바로 돌아오게 했다(1718. 2. 11[구력 1. 31]). 그러나 표트르는 알렉세이가 제위계승권을 포기하고 그의 도주를 도왔던 사람들을 고발하는 것을 사면의 전제로 내세웠다.

알렉세이는 이러한 조건을 받아들였으나 표트르는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알렉세이 지지자들을 수사했고, 알렉세이를 구심점으로 한 잠재적인 반란 움직임이 있음을 발견하고 알렉세이가 반역음모에 가담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후 알렉세이는 상원에서 자백을 강요받았으며, 특별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표트르파벨 요새에서 당한 고문의 충격과 후유증 때문에 처형되기 전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