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길

안수길

다른 표기 언어 安壽吉 동의어 남석, 南石
요약 테이블
출생 1911. 11. 3, 함남 함흥
사망 1977. 4. 18, 서울
국적 한국

요약 소설가. 만주와 함경도를 무대로 민족의 수난사를 다룬 소설을 주로 썼다. 대표작으로 <북향>, <북간도>가 있다.

아호는 남석. 주로 만주와 함경도를 무대로 민족의 수난사를 다룬 소설을 썼다.

간도 용정 광명고등여학교의 교감을 지낸 아버지 용호와 어머니 김숙경(金淑卿) 사이의 2남 1녀 중 큰아들로 태어났다. 6세 때 흥남으로 이사해 소학교를 다니다가 1922년 만주 간도로 이주했다. 1926년 간도중앙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함흥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며 동맹휴교사건과 관련해 자퇴했다. 1928년 서울로 올라와 경신학교 3학년에 편입했으나, 이듬해 광주학생사건으로 15일간 구류생활을 했고 이 사건으로 인해 퇴학당했다.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 1931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고등사범부 영어과에 입학했다가 집안 사정과 학비문제로 중퇴하고 귀국했다. 1932년 박영준·이주복·김국진 등과 함께 문예동인지 〈북향 北鄕〉을 펴냈고, 1936년 간도일보사 기자로 근무하다 1937년 만선일보사로 옮겨 염상섭·송지영·이석훈 등과 함께 일했다. 1945년 6월 건강이 악화되어 만선일보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8·15해방을 맞았으며 3년간 과수원에서 요양했다.

1948년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경향신문사에 입사해 문화부 차장, 조사부 부장을 지냈다. 6·25전쟁 때는 해군 정훈감실 문관으로 복무했고, 1952년에는 피난지 부산에서 용산고등학교 교사, 1954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교수, 1959년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강사, 1960년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중앙위원 등을 지냈다.

북간도. 3
북간도. 3

문학세계

1935년 〈조선문단〉에 단편 〈적십자병원장〉과 콩트 〈붉은 목도리〉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의 문학세계는 크게 3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8·15해방 이전까지로 만주에서의 직접 체험을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만주에 사는 한국인의 고통스러운 삶을 민족 수난사의 의미와 결부시켜 폭넓게 제시했는데, 창작집 〈북원 北原〉(1943)과 장편 〈북향보 北鄕譜〉(1944)가 그것이다. 이 시기 그의 작품경향은 개척 이민의 전사(前史)에 해당되는 〈새벽〉·〈벼〉·〈원각촌 圓覺村〉 등과 1932년 이후 만주 개척 이민의 현단계를 다룬 〈새마을〉·〈목축기〉 등의 두 갈래로 나뉜다. 이들 초기 소설들은 '어떻게 사느냐' 라는 문제를 민족적 단위에서 파악하려는 작가정신이 밑받침되고 있다.

둘째, 월남한 이후 1950년대까지로 〈여수 旅愁〉(백민, 1949. 5)·〈밀회〉(문예, 1949. 10)·〈제3인간형〉(자유세계, 1953. 6) 등이 이에 속한다. 이 작품들의 창작배경은 8·15해방과 월남, 6·25전쟁이다. 앞의 두 작품이 만주에서의 체험과 관련된 것이라면, 뒤의 것은 6·25전쟁과 관련된 것이다. 제3인간형이란 6·25전쟁으로 말미암아 변질된 세 사람의 지식인상을 뜻하며, 이것 역시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에 대한 작가적 탐색이다.

셋째, 1950년대 말기 이후로 기념비적인 장편 〈북간도〉가 그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만주로 이민간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4대에 걸친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순응주의자들의 자기기만을 폭로하고 비순응주의자의 생활태도를 옹호하는 과정을 통해 예술적 성과를 얻고 있으며 그의 민족적 리얼리즘의 가치를 탁월하게 드러낸다. 그외 소설집으로 〈초연필담〉(1953)·〈제2의 청춘〉(1958)·〈이화에 월백하고〉(1978) 등이 있다. 1954년에 아시아자유문학상, 1967년에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