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포프

안드로포프

다른 표기 언어 Yury Vladimirovich Androp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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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14. 6. 15(구력 6. 2), 러시아 나구츠코예
사망 1984. 2. 9, 모스크바
국적 소련

요약 1967~82년 KGB(국가보안위원회) 의장으로 일했으며, 1982년 11월부터 15개월 뒤 사망할 때까지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을 지냈다.
야로슬라프 지역에서 공산주의 청년동맹(콤소몰) 조직책이 되었고, 1939년에 공산당에 입당했다. 얼마 후 카렐로핀 자치공화국의 콤소몰 의장에 임명되었다. 1951년 그는 정치경력의 전환점이 된 모스크바 공산당 서기국에 배속되었다. 헝가리 주재 대사시절에는 소련의 헝가리 침공을 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모스크바로 돌아온 뒤 1967년에 KGB의 의장이 되었고 재임기간동안 KGB는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탄압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 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원으로 선출되었고, 브레주네프 사후에 소련공산당중앙위원회에 의해 그의 후계자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1983년 8월에 갑자기 중병에 걸렸고, 그 후 다시는 공개 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1967~82년 KGB(국가보안위원회) 의장으로 일했으며, 1982년 11월부터 15개월 뒤 사망할 때까지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을 지냈다.

철도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안드로포프는 전신기사와 영사기사 및 볼가 강 뱃사공으로 일하다가 기술대학에 다녔으며, 그후 페트로자브스크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는 야로슬라프 지역에서 공산주의 청년동맹(콤소몰) 조직책이 되었고, 1939년에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의 능력은 상급자들의 주목을 끌어, 새로 수립된 카렐로핀 자치공화국의 콤소몰 의장(1940~44)으로 임명되었다.

안드로포프의 정치경력에 있어 전환점이 된 것은 1951년 모스크바로의 전근이었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유망한 젊은 관리들의 훈련장으로 여겨지는 공산당 서기국에 배속되었다. 헝가리 주재 대사(1954. 7~1957. 3)를 지낼 때는 소련의 헝가리 침공을 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모스크바로 돌아온 뒤, 안드로포프의 당내 서열은 급속히 높아져 1967년에는 KGB의 의장이 되었다. 안드로포프는 KGB 의장으로서 억압 정책을 채택했다. KGB는 그가 이끄는 동안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탄압으로 악명을 떨쳤다. 안드로포프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원으로 선출되었고, 브레주네프의 건강이 나빠지자 안드로포프는 스스로 후계자가 될 공작을 꾸미기 시작하면서 1982년에 KGB에서 사임했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브레주네프가 죽은 지 이틀도 채 지나지 않은 11월 12일에 안드로포프를 브레주네프의 후계자로 선출했다. 그는 1983년 6월 16일 최고회의 간부회 의장(대통령)이 되어 권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1983년 8월에 그는 갑자기 중병에 걸렸고, 그후 다시는 공개 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가 소련의 지도자로서 이룩한 업적은 거의 없었고, 그의 경쟁자였던 콘스탄틴 체르넨코가 뒤를 이어 소련의 지도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