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치 미쓰히데

아케치 미쓰히데

다른 표기 언어 Akechi Mitsuhide , 明智光秀 , あけちみつひで
요약 테이블
출생 1528, 미노[美濃]
사망 1582. 6. 13, 교토[京都]
국적 일본

요약 일본 아즈치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의 무장.

아케치 미쓰히데(Akechi Mitsuhide)
아케치 미쓰히데(Akechi Mitsuhide)

학문에 재능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와카[和歌]와 다도에도 능했다.

아케치는 처음 사이토 씨[齊藤氏]를 섬겼으나 다키가와 가즈마스[瀧川一益]를 따라 북국 정벌에 참가했고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교토[京都]로 상경했을 때는 무라이 사다카쓰[村井貞勝]와 함께 교토의 정무를 담당하여 신임을 얻었다.

1571년 와카사[若狹]를 평정한 공으로 오미[近江]의 사카모토[坂本] 성주로 임명되어 시가 군[滋賀郡]을 다스렸다. 후에 아사쿠라 씨[朝倉氏]가 멸망하고 에치젠[越前]이 평정되자 시바타 가쓰이에[柴田勝家:1522~83] 등과 함 께 그곳을 다스렸다. 1577년에는 오다의 명령을 받고 단바[丹波]로 진격해 단바 경략에 힘썼다.

1582년 오다에 의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공을 치하하기 위한 접대 역을 맡게 되었으나 그 준비중에 다시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지원을 명령받았다. 이에 격분한 아케치는 귀국하여 자신의 병력을 정비하고 상경하여 6월 2일 오다를 혼노 사[本能寺]에서 살해했다(혼노 사의 변). 그러나 그후 즉각적인 수습책을 마련하지 못해 인심을 수습하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편으로 믿었던 가모 가타히데[蒲生賢秀], 호소카와 다다오키[細川忠興], 쓰쓰이 준케이[筒井順慶] 등이 모두 등을 돌려 13일 야마자키[山崎] 전투에서 패하고 도주하던 중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