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우스

아이티우스

다른 표기 언어 Flavius Aetius
요약 테이블
출생 ?, 하(下)모이시아 두로스토룸
사망 454. 9. 21
국적 로마

요약 로마의 장군·정치가.

로마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425~455 재위)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기병대장(마기스테르 에퀴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젊은시절에는 한때 서고트족의 족장 알라리크에게 볼모로 있었고 뒤에는 훈족에게 볼모로 보내졌다. 이로 인해 그는 당시의 주요이민족들에 관한 유용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423~425년에는 이탈리아에서 제위를 찬탈한 요한네스를 지지했으며 갈리아에서 서고트족과 프랑크족을 맞아 성공적으로 전투를 치른 뒤에는 관리(magister utriusque militiae)가 되었다(430). 432년 경쟁자인 보니파키우스가 죽자 재빨리 어린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를 조종할 수 있는 권력을 장악했다. 이로써 그는 서로마 제국을 지배하는 인물이 되었으며 평민으로서는 이례적으로 3차례나 콘술(집정관)을 지냈다(432, 437, 446). 그는 속주에서 파견된 사절들을 황제 대신 접견했으며 433년에는 귀족 칭호를 얻었다.

이후 수년 동안 반란군과 여러 적대적인 부족들에 맞서 갈리아에서 끊임없이 전투를 벌인 끝에 승리했다. 435~437년에 보름스에 있던 부르군트족의 왕국을 무자비하게 파괴했으며(이 사건은 1200년경 씌어진 독일어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 Nibelungenlied〉에 나타나 있음), 437~439년에는 툴루즈에서 서고트족의 이동을 저지한 뒤 440년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451년 서고트족과 연합해 카탈라우니아 평원 전투에서 훈족의 아틸라를 격파했다. 그러나 아틸라가 이듬해 이탈리아에 침입했을 때는 막아낼 수 없었다. 권력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나중에 황제가 됨)의 사주를 받은 발렌티니아누스에게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