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슈르나시르팔 2세

아슈르나시르팔 2세

다른 표기 언어 Ashurnasirpal II
요약 테이블
출생 미상
사망 미상
국적 아시리아

요약 BC 9세기에 활동한 아시리아의 왕(BC 883~859 재위).

아버지인 투쿨티 니누르타 2세가 정복한 영토를 공고히 하여 신(新)아시리아 제국을 건설한 것이 그의 주요업적이다.

스스로는 뛰어난 장군이자 행정가로 공언했으나 그보다는 포로들을 잔학하게 다룬 것을 솔직하고 야만적으로 기술한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그의 치세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그의 비명과, 칼라(지금의 이라크 님루드)에 있는 왕궁의 폐허에서 발견된 화려한 부조에서 알 수 있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연대기는 왕으로서 집권 후 처음 6년 동안 벌인 군사원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제국 내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반란을 진압하여 속주들을 재편하고 공물을 징수하며 반대세력들을 일부러 무자비하게 다룬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동부지역에서 그는 재위 초기에 반란을 일으킨 아르벨라(지금의 이라크 이르빌)의 니슈툰 총독을 살가죽을 벗겨 공개처형했다.

BC 881~880년 단기간의 원정 이후에는 그곳에서 더이상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북부지역에서는 반란세력의 근거지인 키나부를 공격하고 나이리(아르메니아)의 영토를 유린함으로써 아시리아의 담다무사 시(市)의 아람인들의 압력을 물리쳤다. 또한 국경지역에 대한 통제를 위해 아시리아의 새로운 속주 투슈한을 설치했으며, 그 속주에서 그의 아버지의 통치 당시 적대자였던 암메 바알리에게 공물을 받아냈다. 그러나 BC 879년 카시아리 산맥에 사는 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암메 바알리를 죽였다.

아시리아는 지체 없이 잔혹하게 복수했다. 서부지역에서 그는 강국 비트-아디니의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아람인들을 굴복시켰다. 이후 계속해서 카르케미시와 오론테스 강을 거쳐 아무런 저항 없이 지중해로 전진해 나갔으며, 그 경로에 있는 지역과 페니키아의 도시들로부터 조공을 받아냈다.

아슈르나시르팔은 전쟁포로들을 칼라 시 재건사업에 동원했다. 원래 이 도시는 샬마네세르 1세(BC 1274~45)에 의해 세워졌으나 이때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BC 879년 성채의 주요궁과 니누르타 사원 및 엔릴 사원, 그리고 여러 신들을 위한 신전, 도시 성곽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식물원과 동물원이 마련되었으며, 대(大)자브 강에서 운하를 통해 물을 끌어들였다. 이 도시에 남아 있는 비명과 부조는 니네베에서 옮겨온 것인데 당시 아슈르나시르팔의 치세에 관한 주요사료를 제공한다. BC 879년 아슈르나시르팔 왕이 이곳으로 옮겨와 칼라 시의 재건을 축하하기 위해 6만 9,574명을 동원하여 10일간 축제를 벌였던 것을 기념하는 한 석주(石柱)가 1951년 이곳에서 발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