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둘라

아브둘라

다른 표기 언어 Abdullah 동의어 압둘라 1세 빈 알후세인, Abd Allāh ibn al-Husayn, 요르단 제1대 국왕
요약 테이블
출생 1882, 메카
사망 1951. 7. 20, 예루살렘
국적 요르단

요약 독립한 아랍 요르단 왕국의 제1대 왕이 된 정치가.
정식 이름은 ⁽Abd Allāh ibn al-Ḥusayn.

헤자즈의 통치자 후사인 이븐 알리의 둘째 아들로 이스탄불에서 교육을 받았다. 1908년 투르크 혁명이 일어난 뒤 그는 오스만 의회에서 메카를 대표하는 위원이 되었으며 1914년초 오스만 제국에 포함된 아랍 영토의 독립을 목표로 하는 아랍 민족주의 운동에 가담했다. 1915~16년 그는 오스만에 반대하는 아랍인 반란선언(1916. 6. 10)을 지도한 아버지와 영국의 이집트 식민정부 간에 은밀한 협상을 추진시키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920년 3월 8일 다마스쿠스에서 열린 소위 이라크 의회는 모호한 정통성을 근거로 아브둘라를 이라크의 입헌군주로 선포했다.

그러나 그가 이라크 왕위를 사절했기 때문에 1921년 8월 그의 형제인 파이살 1세에게 왕위가 돌아갔다. 프랑스군이 파이살을 다마스쿠스에서 쫓아낸 뒤(1920. 7), 아브둘라는 트란스요르단을 점령하고 시리아에게 공격위협을 가했다. 그는 점진적인 협상을 통해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에서 트란스요르단을 합법적으로 분리시키는 데 성공했다.

시리아와 이라크, 트란스요르단을 포괄하는 통일 아랍 왕국의 건설이 아브둘라의 야망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그는 영국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며 그의 아랍 군단은 1941년 영국의 시리아 및 이라크 점령에 참여했다. 1946년 트란스요르단이 독립되자 1946년 5월 25일 암만에서 왕위에 올랐다. 그는 아랍 통치자들 중에서 팔레스타인을 유대국과 아랍국으로 분할한다는 국제연합(UN)의 결의(1947)를 기꺼이 받아들인 유일한 인물이었다.

1948년 5월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그의 군대는 요르단 강 웨스트뱅크를 점령하고 구(舊)예루살렘을 장악했다. 2년 뒤 그는 웨스트뱅크 지역을 요르단 왕국의 일부로 합병했는데 이같은 행동은 아랍 동맹국들인 시리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및 이집트를 자극했다. 이 나라들은 서안지역에 팔레스타인 아랍 국가가 건설되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떨어졌으며 결국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