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 성가

아르메니아 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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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성악과 그 가사로 쓰이는 신앙 시.

아르메니아는 일찍부터 시리아와 지중해 동부 그리스어 사용권에서 온 선교사들에게서 복음을 받아들였으며, 300년경에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았다. 아르메니아의 독특한 전례는 여러 요인들에 영향을 받아 발전했다. 4세기말에 접어들면서 아르메니아 교회는 소아시아 카파도키아에 있는 카이사리아 대주교구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401년 아르메니아의 위대한 학자 성 메스로브는 아르메니아어 알파벳을 만들었으며, 시리아어와 그리스어로 기록된 중요한 신앙 서적들을 아르메니아어로 많이 옮겼다. 새 문자가 생긴 데 자극을 받아 문학이 꽃을 피웠는데, 그중에서 중요하고 두드러진 부분은 신앙시였다. 현존하는 작품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4세기의 것이다.

12세기에 가톨리코스(총대주교) 네르세스 4세 슈노르할리'자애로운 이'는 성악을 개혁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는 신앙 시의 가사들과 성가의 가락을 단순하게 고쳐 아르메니아 민속음악에 더 가깝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네르세스는 또한 많은 〈샤라칸 Sharakan〉'찬송들'을 썼다. 1,200곡에 달하는 찬송가들이 수록된 〈샤라칸〉 모음집이 완성된 것은 1300년경이며, 그 이후로는 바뀌지 않은 채 전해내려온 것이 분명하다.

1820년경 이스탄불 출신의 아르메니아인 바바 함파르트소움 리몬디얀은 그리스 정교회의 음악부호 개혁(음의 높이를 더욱 정확하게 표시하도록 했음)에 호응하여 음악부호를 현실에 맞게 고치자고 주장했다. 아르메니아 성가가 연주되는 것을 들어보면 그것이 매우 다양한 박자들과 복잡한 가락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가락들은 유럽 음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많은 음정을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랜 전승에 따르면, 아르메니아 성가의 가장 신빙성 있는 구두전승은 아르메니아의 종교 수도 에크미아드진과 몇몇 외딴 수도원들에서 나온다고 한다. 아르메니아의 음악 연구를 위한 중요한 중심지는 베네치아에 있는 산라자로의 아르메니아 가톨릭 수도원(1717)인데, 전통적인 아르메니아 멜로디가 이곳에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