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마냐크

아르마냐크

다른 표기 언어 Armagnac

요약 프랑스 남서부에 있는 역사상의 지방.

지금은 제르 주에 속한다. 메로빙거 왕조와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는 가스코뉴 공작령의 일부였으며, 10세기에 봉건체제가 와해될 때는 정치적인 독립체가 되었다. 12세기부터 프랑스의 왕들이 지배했던 툴루즈와 영국의 왕들이 지배했던 귀엔 사이의 완충지대로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 되었다.

아르마냐크의 백작들은 이러한 지정학적 이점을 이용해 동맹관계를 바꾸어가며 높은 수준의 독립성을 유지했다. 100년전쟁(1337~1453) 동안에 맺어진 칼레 조약(1360)으로 영국이 이곳에 대한 종주권을 얻었으나, 1368년 영국의 지배에 반대하는 아르마냐크의 백작 장 1세의 간청을 빌미로 프랑스의 샤를 5세는 전쟁을 재개했다. 14세기 동안 이곳의 백작들은 소유지를 크게 늘렸는데, 15세기초에 이르러서는 백작령이 가론 강에서 피레네 산맥까지 이르렀고 마시프상트랄의 일부까지 포함했다.

백작 베르나르 7세는 소유지들의 위치와 가스코뉴 용병들을 기반으로 15세기초의 프랑스 내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407년 부르고뉴의 공작 장이 오를레앙의 루이 공작(광인왕 샤를 6세의 형)을 살해하자, 부르고뉴에 대한 저항으로 아르마냐크당이 결성되었다. 베르나르는 자신의 딸을 죽은 루이의 아들과 결혼시킴으로써 옛 오를레앙파를 흡수했다(→ 부르고뉴인). 부르고뉴파가 가끔 영국과 동맹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아르마냐크당이 민족주의적으로 보였지만 근본적으로는 권력을 추구하는 무리였다. 그들은 1413년부터 광인왕 샤를 6세를 조정하기 시작했으며, 베르나르는 왕실의 대신, 군 총사령관 및 모든 재정일의 감독관으로 임명되었다.

아르마냐크파는 프랑스를 침공한 영국 왕 헨리 5세에 대한 저항을 주도했으나 아쟁쿠르 전투(1415)에서 패배했다. 아르마냐크파 정부의 가혹한 정치가 불만을 사자, 1418년 여름에 부르고뉴파가 파리로 입성하여 베르나르와 그의 추종자들을 많이 죽였다. 1418년 이후 새로운 왕 샤를 7세가 왕권을 행사하고 부르고뉴의 공작 샤를과 화해함에 따라 아르마냐크파는 급속히 세력을 잃어갔다. 15세기말에 루이 11세가 아르마냐크 백작령을 침공해 중심지 렉투르를 함락시키고 영토를 몰수했다. 1607년 앙리 4세 재위기간에 이 지방은 프랑스 왕실에 영구적으로 합병되었다. 17~18세기에 귀엔에가스코뉴 군관구의 한 행정구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