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티노

아레티노

다른 표기 언어 Pietro Aret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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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492. 4. 20, 피렌체 공화국 아레초(지금의 이탈리아)
사망 1556. 10. 21, 베네치아
국적 이탈리아

요약 이탈리아의 시인·산문작가·극작가.

대담한 필치로 거리낌없이 권력층을 공격하여 당시 전유럽에서 이름을 떨쳤다. 정열적으로 쓴 그의 편지와 대화는 전기적이고 시사적인 면에 대단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비극 〈오라치아 Orazia〉와 5편의 희극은 일부 비평가들로부터 당대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원래 아레초에서 구두직공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훗날 귀족의 사생아로 행세하며 고향인 아레초에서 아레티노라는 이름을 따서 썼다(그의 본명은 알려져 있지 않음). 아직 젊었을 때 페루지아로 자리를 옮겨 한동안 그림을 그리며 지내다가 1517년 로마로 갔다. 그곳에서 교황 후보였던 줄리오 데 메디치(1523년 교황 클레멘스 7세로 즉위)를 지지하며 다른 후보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풍자문들을 여러 편 썼다.

교황을 비롯한 여러 후원자들이 그를 옹호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레티노는 그에 대한 좋지 못한 평판과 시집 〈음란한 소네트 Sonetti lussuriosi〉(1524)로 인해 결국 로마를 떠나야만 했다. 로마를 떠나 1527년 베네치아로 간 그는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여생을 호화롭고 방종한 생활로 보냈다. 베네치아에서 사귄 그의 가장 친한 친구는 티치아노라는 화가로서, 아레티노는 그의 그림을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에게 팔아주었다. 티치아노가 그린 아레티노의 초상화(1545경, 피렌체 피티 궁전)에서 그가 하고 있는 멋진 금목걸이는 왕에게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수많은 작품 중에서 그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은 종종 협박에 가까울 정도로 권력층을 공격하는 풍자물이다. 1537~57년에 씌어진 6권으로 된 서한집(1913~16년에 〈아레티노의 서간문 1, 2권 Il Ⅰ e il Ⅱ libro delle lettere di Pietro Aretino〉으로 재간행됨)은 힘과 냉소주의를 잘 보여줌으로써 그가 자신을 '군주들을 혼내주는 사람'이라 부르는 것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그는 특히 로마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그를 베네치아로 쫓아냈기 때문이었다.

〈토론 Ragionamenti〉(1534~36, 근대판 1914)에서 로마 매춘부들의 대화를 통해 로마 유력인사들의 도덕심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폭로하고 있으며 〈대화 I dialoghi〉와 다른 대화집에서도 계속해서 로마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음탕한 행위와 부패를 파헤치고 있다. 이러한 신랄한 공격은 희곡에서만은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난다. 5편에 이르는 그의 희극 작품들은 당시 희곡을 쓸 때 따라야만 했던 관례에서 벗어나 하층민들의 삶의 모습을 생생하고도 예리하게 포착했다.

1525~44년에 쓴 5편의 희극작품(1914년에 〈Commedie〉로 간행)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매춘부 Cortigiana〉(1534, 초연 1537)로서 교황 통치하의 로마에 사는 하층민들의 삶을 활기차고 재미있게 그린 작품이다. 비극 〈오라치아〉(1546)는 일부 비평가들로부터 16세기 이탈리아 최고의 비극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영어로 된 전기로는 T. 처브(1940)와 J. 클러우(1966)가 쓴 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