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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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표기 언어 confession of faith , 信仰告白

요약 중세 그리스도교 교회는 교리상의 특정한 문제들은 논쟁을 거쳐 공의회에서 확정했으며 교리를 문서로 만들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인해 교리체계의 주요쟁점들을 정의하기 위해 선언문들이 작성되었다. 이들 대부분의 문서들은 교회의 교리적 입장을 밝힐 목적으로 편집되었다. 그중 몇몇 문서는 원래 다른 목적으로 작성되었지만, 곧 권위있는 교리서가 되었다. 최초의 종교개혁 신앙고백서들은 1530년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에 앞서 작성된 초안들이었다. 루터파의 이 신앙고백서 형식을 다른 개혁교회들도 따랐으며, 심지어 트리엔트 공의회(1545~ 63)도 이것을 따랐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칙령들과 교회법들은 1564년 공포된 〈트리엔트 신앙고백〉과 함께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리적 입장을 문서화한 것이다.

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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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은 교회 신조와 비슷하지만 대개는 좀더 포괄적이며, 특히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으로 세워진 교회들과 연관된다. 중세 그리스도교 교회는 교리를 공적인 문서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고대에서 전승된 신조(니케아 신조)나 중세 초기에 작성된 신조들(사도신경, 아타나시우스 신조)을 공적인 예배 때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는 데 사용했다(→신조).

교리상의 특정한 문제들은 논쟁을 거쳐 공의회에서 확정했다. 1439년 페라라·피렌체 공의회가 공포한 7성사(聖事)에 대한 칙령은 교리체계의 한 가지 중요한 부분에 관한 진술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아직 교리를 문서로 만들려 하지 않았다. 또한 중세의 이단운동들도 신앙에 대한 포괄적인 선언문들을 내놓지 않았다.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인해 교리체계의 주요쟁점들을 정의하기 위해 선언문들이 작성되었다. 이들 대부분의 문서들은 교회의 교리적 입장을 밝힐 목적으로 편집되었다. 그중 몇몇 문서는 원래 다른 목적으로 작성되었지만(예를 들면 루터의 교리문답서), 곧 권위있는 교리서가 되었다. 최초의 종교개혁 신앙고백서들은 1530년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에 앞서 작성된 초안들이었다. 루터파의 이 신앙고백서 형식을 다른 개혁교회들도 따랐으며, 심지어 트리엔트 공의회(1545~ 63)도 이것을 따랐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칙령들과 교회법들은 1564년 공포된 〈트리엔트 신앙고백 Professio fidei Tridentina〉과 함께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리적 입장을 문서화한 것이다. 그밖의 중요한 프로테스탄트 신앙고백으로는 루터교 슈말칼덴 조항(1537), 협화신조(1577), 협화서(1580), 개혁교회의 헬베티아 신앙고백(1536, 1566), 갈리아 신앙고백(1559), 벨기에 신앙고백(1561),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1563), 도르트 신조(1619), 장로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8), 성공회의 39개 조항(157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