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 전쟁

시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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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시크교도와 영국 사이에 일어난 2차례의 전쟁(1845~46, 1848~49).

시크교도가 패하여 북서 인도의 펀자브 지방은 영국령으로 병합되었다.

제1차 전쟁은 시크군의 상호 반목과 동요 때문에 일어났다. 마하라자 란지트 싱(1801~39)은 펀자브에 시크 국가를 세우고 강력한 세력으로 키웠다. 그러나 그의 사후 6년 만에 계속된 궁정반란과 암살로 인해 정부는 혼란에 빠졌다.

1843년 란지트 싱의 어린 막내 아들이 군주의 자리에 올랐고 그의 어머니가 섭정여왕으로 선포되었다. 그러나 실제적인 권력은 군대에 있었고 군대의 권력은 '푼치'(Punches), 즉 군사위원회에 장악되어 있었다. 시크교도들은 제1차 영국-아프간 전쟁(1838~42) 때 영국 군대가 자신들의 영토를 통과하는 것을 거부하여 영국과의 긴장된 관계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영국군의 공격을 방지한다는 구실로 영국령 인도를 침범하기로 결정하고 1845년 12월 시크교도들은 수틀레지 강을 건넜다. 무드키·피로즈샤(피로즈푸르)·알리왈·소브라온에서 4차례에 걸친 피비린내나는 난투 끝에 시크교도들은 패배했다.

영국은 수틀레지 강 동쪽으로 이 강과 베아스 강 사이에 있는 시크 영토를 병탄했다. 동시에 카슈미르와 잠무도 빼앗겼고 시크 군대는 보명 2만 명, 기병 1만 2,000명으로 제한되었다. 영국 총독대리가 군대를 이끌고 라호르에 주둔했다.

제2차 시크 전쟁은 1848년 4월 물탄의 지방장관인 물라지의 반란으로 시작되어 9월 14일 시크 군대가 여기에 합세함으로써 거족적 봉기가 되었다. 혹독했지만 서투른 지휘로 승패가 판가름나지 않는 전투가 람나가르(11. 22)와 칠리안왈라(1849. 1. 13)에서 벌어졌는데, 결국 영국군이 구지라트(1849. 2. 21)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3월 12일 시크군이 항복했고 펀자브 지방은 영국에 병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