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노세키 조약

시모노세키 조약

다른 표기 언어 下關條約 동의어 일청강화조약, 하관조약, 마관조약

요약 1894년(고종 31)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시모노세키(下關)에서 청과 체결한 강화조약. 청은 이 조약을 체결하면서 조선의 독립과 랴오둥 반도의 할양, 배상금의 지불, 다른 열강과 같은 특권의 인정 등을 일본에 약속했다. 이에 따라 동아시아에서 전통적으로 중국이 차지하고 있던 위상이 붕괴되고, 일본은 서구 열강과 같은 근대적 민족국가의 기틀과 위상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후 랴오둥 반도에 진출하려던 일본은 러시아, 독일, 프랑스 삼국의 견제와 간섭으로 철수했으나, 이 삼국간섭은 이후 러일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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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요
  2. 배경
  3. 조약의 체결
  4. 영향과 결과

개요

시모노세키 조약
시모노세키 조약

일본과 청이 청일전쟁의 결과로 체결한 조약. 청과 일본 양국간 9개월에 걸쳐 진행되었던 청일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일본 시모노세키(下關)에서 맺어진 조약으로 패전국인 청이 일본에 대하여 그동안 누리던 여러 권리를 대폭 양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배경

일본정부는 청일전쟁을 종결하면서 무쓰 무네미쓰(陸奧宗光) 외무상이 기안한 강화조약안을 마련했다. 1895년 3월 19일 청의 전권단인 리훙장(李鴻章) 일행이 도일하여 시모노세키 강화회담을 통해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미 3월 7일부터 타이완과 펑후 제도(澎湖諸島)에 군사적 침략을 감행하여 협상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었다. 3월 30일 청의 요청에 의해 휴전이 성립되었다.

조약의 체결

청·일 양국간의 교섭이 진행되었지만 결국 군사력이 우세했던 일본의 요구가 대부분 인정되었고, 4월 17일 청·일 강화조약이 조인되었다. 이에 따라 5월 8일 청의 즈푸(芝罘)에서 비준서가 교환되었고 청일전쟁은 종결되었다. 조약내용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의 확립, 랴오둥 반도(遼東半島), 타이완, 펑후 제도 등에 대한 영토의 분할, 배상금의 획득, 열강과 동등하게 특권을 인정한 통상조약 체결 등이었다.

이토 히로부미와 무쓰 무네미쓰
이토 히로부미와 무쓰 무네미쓰

영향과 결과

청일 전쟁에서 청이 패하면서 전통적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종주국의 지위를 누려왔던 중국의 위상과 '중국 중심의 천하'의 개념은 붕괴되었다. 일본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중국과 대등한 근대적 민족국가의 위상을 확보하고 서구 열강에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보했다. 이 조약에 따라 청은 조선의 독립을 인정했고, 일본은 조선에 대한 정치적·군사적·경제적 지배권을 확보할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은 이밖에도 청에게서 전쟁배상금으로 2억 냥을 영국 파운드화로 받기로 했는데, 이 금액은 청나라의 1년 세입의 두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일본의 전쟁비용은 2억 47만 5,000엔이었지만 배상금은 일본돈으로 약 3억 엔이었으며, 이 금액은 이후 일본의 금본위제의 기금과 군비확장의 재원이 되었다.

이 조약에서 일본에게 할양하기로 한 랴오둥 반도는 베이징에 인접한 지역으로 일본에게는 중국 대륙에 진출할 요충지였으나, 일본의 세력 확대를 견제하려는 러시아, 독일, 프랑스 삼국의 간섭으로 확보에 실패하고 말았다. 삼국의 위세에 밀린 일본은 랴오둥 반도에서 철수하는 대가로 청에게서 3천만 냥을 추가 배상금으로 받았다. 일본이 이 지역에 실질적으로 진출하게 된 것은 러일 전쟁 이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