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전쟁

시리아 전쟁

다른 표기 언어 Syrian Wars

요약 BC 3세기에 주도적인 헬레니즘 국가들이 5차례에 걸쳐 일으킨 전쟁.

주로 셀레우코스 왕국과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중심으로 일어났고 마케도니아도 참가했다. 이 전쟁을 둘러싼 복잡하게 얽힌 외교관계는 헬레니즘 왕조들의 특징을 보여준다. 셀레우코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 주요원인은 남부 시리아에 대한 지배 때문이었다.

제1차 시리아 전쟁(BC 274~271)에서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셀레우코스 왕국이 차지하고 있던 시리아 북쪽 해안의 페니키아를 비롯해 아나톨리아의 대부분과 키클라데스 제도를 빼앗았다.

제2차 전쟁(BC 260경~255/253)에서는 셀레우코스 왕 안티오코스 2세가 마케도니아 왕 안티고노스 고나토스의 지원을 받으며 대체로 성공적인 선제공격을 통하여 페니키아와 아나톨리아를 탈환했다.

라오디케아 전쟁이라고도 하는 제3차 전쟁(BC 245경~241)은 프톨레마이오스 3세가 안티오코스 2세의 뒤를 이은 아들 셀레우코스 2세에게 불리한 그 전의 외교협정들을 강요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셀레우코스 2세는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아나톨리아에 있는 영토를 카파도키아와 폰투스의 통치자들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평화협정에 따라 프톨레마이오스 3세는 시리아의 셀레우코스령 피에리아와 트라케아의 몇몇 해안지역을 차지했다.

BC 236년에 이르러 이른바 '형제전쟁'(War of the Brothers)의 결과 셀레우코스 2세는 아나톨리아의 나머지 땅을 동생 안티오코스 히에라크스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그러나 안티오코스는 이 땅을 아나톨리아의 지배자인 페르가몬 왕국의 아탈로스 1세에게 빼앗겼다. 또한 이무렵 셀레우코스 왕국의 동부 영토였던 박트리아와 파르티아 지방이 여러 독립적인 지배자들의 손에 넘어갔다. BC 221년경 안티오코스 3세는 셀레우코스 왕조 부흥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이집트 공격에 실패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제4차 전쟁(BC 219~217)은 안티오코스 3세가 시작했으나 프톨레마이오스 4세가 팔레스타인 라피아에서 승리를 거두어 코일레시리아(시리아 남부와 팔레스타인)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반란이 일어남으로써 그의 승리에 또다른 짐을 안겨주었다.

제5차 전쟁(BC 202~200)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로부터 코일레시리아를 되찾기 위해 셀레우코스 왕조가 다시 일으켰고 이들이 최종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전쟁은 막을 내렸다. 안티오코스 3세는 뒤이어 팔레스타인 남부의 유대 땅에 헬레니즘화(化) 정책을 실시했으나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BC 142년 독립을 승인해야 했다. 계속된 전쟁으로 쇠약해진 헬레니즘 국가들은 BC 2, 1세기에 결국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