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슨

스팀슨

다른 표기 언어 Henry L(ewis) Stim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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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67. 9. 21, 미국 뉴욕 시
사망 1950. 10. 20, 뉴욕 헌팅턴
국적 미국

요약 미국의 정치가.

1930~40년대 미국 외교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11~45년 대통령이 5번이나 바뀌었으나 계속 행정부에서 일했다. 1891년 뉴욕에서 변호사 자격을 얻고 1906~09년 뉴욕 주 남부지역에서 미국 정부 변호사로 일했다. 1911~13년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이 이끄는 내각에서 육군장관을 역임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야전포병대 장교로 프랑스에서 잠시 전투에 참가했다.

1927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에 의해 니카라과 특사로 임명됨으로써 다시 공직을 맡아 니카라과 내전을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27~29년에는 필리핀 총독을 지냈다. 허버트 후버 대통령(1929~33 재임) 때는 국무장관을 지내면서 1930년 미국 대표단을 이끌고 런던 해군회의에 참가했다.

1931년 일본이 만주를 점령하자 일본과 중국에 같은 내용의 문서를 보내(1932. 1. 7) 미국은 파리 협정(1919)에 위배되거나 미국의 조약권을 침해하는 어떤 상황·조약·협정도 불법으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정책은 뒤에 '스팀슨 독트린'으로 알려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스팀슨은 솔직한 중재자이자 '연합군 원조 미국 방위위원회'의 주요인물로 부각되었다. 평생 동안 공화당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40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육군장관에 임명되었는데 이는 양당 연합의 외교정책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육군장관을 지내면서 스팀슨은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미군의 확장과 훈련에 앞장섰다. 또 루스벨트 대통령과 해리 S. 트루먼 대통령 밑에서 원자정책 최고자문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일본의 군사 요충지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것을 권고했다. 나중에 그는 이 권고가 일본의 항복을 앞당겨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함으로써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대한 원자폭탄 투여를 인도주의적 차원으로 정당화했다.

스팀슨은 1945년 9월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니카라과에서의 미국 정책 American Policy in Nicaragua〉(1927)·〈유럽의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Democracy and Nationalism in Europe〉(1934)·〈극동의 위기 The Far East Crisis〉(1936) 등이 있다. 그밖에 맥조지 번디와 함께 쓴 자서전 〈전시와 평화시의 현역 On Active Service in Peace and War〉(1948)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