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너프

스태너프

다른 표기 언어 James Stanhope, 1st Earl Stanhope
요약 테이블
출생 1673, 파리
사망 1721. 2. 5, 런던
국적 영국

요약 영국의 군인·정치가.
Viscount Stanhope of Mahon(1717~), Baron Stanhope of Elvaston이라고도 함.

조지 1세의 통치 초기(1714~21)에 유력한 장관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프랑스와 동맹을 맺어 평화를 확보했고, 스튜어트 왕가의 지배를 되살리려고 애쓰는 '재커바이트'들에 대한 외국의 지지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체스터필드 백작 1세의 손자이며 외교관의 아들인 스태너프는 1691년 화려한 군대생활을 시작했다.

스페인 왕위계승전쟁(1701~14)이 한창이던 1708년에 스페인 주재 영국군 총사령관이 되어 미노르카를 점령했지만, 1710년 12월에는 브리우에가에서 프랑스군에 패해 포로가 되었다. 1712년 8월에 풀려난 뒤 1701년부터 휘그당 소속 하원의원이었던 그는 영국으로 돌아가 다시 하원의원이 되었고, 1710년에는 헨리 서셰버럴을 공격하는 주역을 맡았다.

조지 1세가 즉위하고 휘그당이 권력을 잡자 남부 담당 국무장관에 임명되었다. 그는 하원의 주도권을 로버트 월폴과 나누어 갖고 있었지만 외교정책에서는 비범한 재능을 발휘했다. 1717년 프랑스·네덜란드와 3국동맹을 맺었고, 이듬해에는 오스트리아까지 이 동맹에 끌어들였다. 이어서 이 4국동맹을 이용해 스페인에 압력을 넣어 오스트리아와의 분쟁을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그가 프랑스와 맺은 동맹 덕분에 영국은 그후 15년 동안 유럽의 외교중재자 노릇을 했다. 그는 북부 유럽으로 관심을 돌려 영국과 스웨덴의 갈등을 해결했고, 그 덕분에 영국은 귀중한 해군 군수품(침엽수에서 채취하는 테레빈유나 피치 등 해군에 필요한 물자)을 스웨덴으로부터 계속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정상 외교의 명수였다. 1716~17년에 월폴과 그의 동료인 찰스 타운센드 자작이 유럽 문제에 일일이 개입하는 스태너프의 외교 정책에 항의해 사임했다.

그후 그는 국무장관만이 아니라 총리직(1717~18)까지 맡게 되었으며 이무렵 종교적 관용정책으로 유명해졌다. 1717년 자작작위, 1718년 백작작위를 받았으며 2년 뒤 정부 관리들이 연루된 금융 투기사건인 '남해회사' 포말사건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파산하자 그는 아무 잘못도 없었지만 불신임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