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켈턴

스켈턴

다른 표기 언어 John Skelton
요약 테이블
출생 1460경
사망 1529. 6. 21, 런던
국적 잉글랜드, 영국

요약 튜더 왕조의 시인이며 정치적·종교적 주제를 다룬 풍자작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중요한 영국 시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자연스러운 구어 운율에 기초한 짧은 압운 행으로 구성된 개성있는 시 양식은 스켈턴체(Skeltonics)로 불리게 되었다.

출생지와 어린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공부한 뒤 옥스퍼드, 네덜란드의 루뱅(지금의 벨기에에 있음), 케임브리지에서 수사학학위에 해당하는 '계관시인' 자격을 얻었다. 이러한 성공과 고대 그리스 로마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는 재주가 뛰어난 덕택에 1489년 헨리 7세 시대의 궁정시인으로 임명받았으며, 그뒤에는 요크 공작(후에 헨리 8세)의 '교사' 자리도 아울러 얻었다. 1498년 사제서품을 받았고, 1502년 헨리가 왕위를 물려받아 왕실이 개편될 때 노퍽 주 디스의 주임사제가 되었다. 1512년부터는 런던에 살았으나 죽을 때까지 이 직책을 맡았다. 1512년경 헨리 8세의 대변인으로 임명되었고, 이 자리에 있으면서 공적인 문제나 교회문제를 궁정시를 통해 왕에게 충고했다.

초기작품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나, 북부 르네상스의 대표자인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가 1499년 영국을 방문했을 때 그를 가리켜 '영국 문단에서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대문호'라고 했을 만큼 명성이 대단했다. 당시 궁정에서 가장 유명했던 그의 시는 궁정생활의 힘든 경험을 풍자한 〈Bowge of courte〉이다. 디스에서 지낼 때에야 비로소 독특한 스켈턴체를 시도했는데, 이 시기에 쓴 대표작은 〈Phyllyp Sparowe〉·〈매를 조심하라 Ware the Hawke〉 등이다. 〈Phyllyp Sparowe〉는 겉으로는 한 귀족처녀가 애완동물의 죽음을 슬퍼하는 내용이지만, 장례식에 대한 풍자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 〈매를 조심하라〉는 불경스럽게도 사냥을 즐기는 한 사제가 스켈턴의 교회 안으로 매를 날려보낸 것에 격분해 그를 공격한 시이다.

스켈턴이 쓴 궁정시는 대부분 풍자시이다. 왕의 적들을 맹렬히 공격한 〈스코틀랜드 왕의 발라드 A ballad of the Scottysshe Kynge〉는 플로든 전투가 일어난 뒤인 1513년에 씌어졌고, 그 이듬해에는 악담을 주고받는 '구론시' 연작을 써서 궁정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1516년 정치 풍자극이며 영어로 씌어진 최초의 비종교적 도덕극 〈폐하 Magnyfycence〉를 썼다. 그뒤 술집에서 취한 여인을 탁월하게 묘사한 〈엘리노어 러밍의 가락 The Tunnyng of Elynour Rummynge〉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인기를 얻었으나 뒷날 스켈턴이 '야비한' 시인이라는 악명을 얻은 주된 원인이 되었다.

대표적인 정치·종교 풍자시 3편은 〈앵무새에게 말하라 Speke Parrot〉(1521)·〈콜린 클라우트 Collyn Clout〉(1522)·〈당신은 왜 궁정으로 오지 않는가 Why come ye nat to courte〉(1522) 등이다. 세 작품은 모두 교회와 정치 양쪽에서 토머스 울지 추기경의 권력이 커지고 있는 상황과 인문주의자들의 새로운 학문이 지닌 위험성을 겨냥하고 있다. 울지가 너무 강력한 적이어서 더이상 공격해도 소용 없음이 드러나자 말기의 시에서는 서정적이고 우화적인 주제를 택해 이 시들을 모두 추기경에게 헌사했다. 종교에서는 신교가 득세하고 시 양식에서는 이탈리아풍이 유행했던 16세기 영국에서 스켈턴의 명성은 급격히 쇠퇴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그의 자질이 새롭게 평가받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