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바벤

슈바벤

다른 표기 언어 Schwaben

요약 독일 남서부의 역사적인 지역.
(영). Swabia.

오늘날 독일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남부와 바이에른 주 남서부, 스위스 동부와 알자스를 포함한다.

슈바벤이라는 명칭은 수에비라는 게르만계 부족의 명칭에서 유래했다. 수에비족은 3세기에 알레마니족과 함께 라인 강 상류와 도나우 강 상류 지방을 점령하고 남쪽으로 콘스탄츠 호와 동쪽으로 레흐 강까지 세력을 뻗쳤다. 이 지방은 처음에 알레만니아로 알려졌다가 11세기부터 슈바벤이라고 불렸다. 클로비스가 이끄는 프랑크족은 500년경 알레만니족을 정복하고 알레만니족의 관습법에 바탕을 둔 법(Lex Alemannorum)으로 그들을 다스렸다.

7세기 무렵에는 아일랜드 선교사들이 이 지역에 그리스도교를 들여오기 시작했다. 그리스도교 보급의 중심지로는 장크트갈렌과 라이헤나우의 수도원, 바젤·콘스탄츠·아우크스부르크 등지의 주교구 등이 있었고 슈바벤 주교구의 대부분은 마인츠의 대주교령에 소속되었다. 슈바벤은 프랑켄·작센·바이에른·로트링겐(로렌) 등과 더불어 혈통 또는 부족에 근거를 둔 초기 중세 독일의 5대 슈탐 공작령의 하나로서 여러 가문이 잇달아 지배했다.

1057년 공작이 된 라인펠덴의 루돌프가 1077년 하인리히 4세에게 반기를 들고 독일 왕으로 옹립되자 하인리히 4세는 1079년 루돌프의 사위인 호엔슈타우펜의 프리드리히 1세를 슈바벤 공작으로 임명했다. 1152년에는 프리드리히의 손자가 독일 왕 프리드리히 1세(붉은수염왕)로 선출되어 슈바벤은 1268년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남자 혈통이 끊어질 때까지 대를 이어 그 가문의 소유지가 되었다.

그 이후로는 뷔르템베르크 백작들을 비롯한 지방 귀족들이 공작령과 왕실의 영지를 차지했다. 독일 왕이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루돌프는 공작령 일부를 챙겨서 자기 아들인 오스트리아의 루돌프 2세에게 넘겨주었으나 1313년 루돌프 2세의 아들이 죽자 슈바벤 공작 칭호는 더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중세말에 이루어진 이른바 슈바벤 동맹은 황제, 토호, 소귀족의 지원을 받는 도시들 사이의 분쟁을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321년 제1차 동맹 때는 울름과 아우크스부르크를 비롯한 슈바벤 지방의 제국(자유)시 22개가 한데 뭉쳐 그들 중 어느 도시도 봉신에게 저당잡히지 않겠다고 약속한 황제 루트비히 4세를 지원했다. 1340년 뷔르템베르크 백작 울리히 3세도 이 동맹에 가담하도록 권유받았다. 이에 반대하는 슈바벤의 기사들은 1366년 독자적으로 슐레글러분트(그들의 기장으로 쓰인 망치를 뜻하는 독일어 '슐레겔'에서 유래한 명칭)를 결성했다.

뒤이어 내전이 벌어지자 울리히 3세의 아들이며 후계자인 에베르하르트 2세는 슐레글러분트에 가담해 1372년 도시들을 격퇴했다.

1376년 울름 시가 앞장서서 새로 14개 도시의 동맹을 조직해 1377년 에베르하르트 2세의 아들 울리히를 로이틀링겐에서 격파하고 남부 독일에서 세력을 형성했으나 1388년 다시 에베르하르트 2세에게 패배했다. 그러나 1395년 뷔르템베르크의 에베르하르트 3세가 하임스하임에 있는 슐레글러분트의 요새를 점령하고 슐레글러분트를 와해시켰다.

1488년 에슬링겐에서 새롭고 더 광범위한 슈바벤 동맹이 결성되었다. 이때는 22개 제국시뿐만 아니라 슈바벤 기사들의 모임인 성 게오르기우스의 방패기사동맹(League of St. George's Shield)과 주교 및 제후들(티롤·뷔르템베르크·팔츠·마인츠·트리어·바덴·헤센·바이에른·안스바흐·바이로이트)까지 참여했다. 이 동맹은 제후·도시·기사의 3계층이 참여하는 동맹의회가 통솔했으며 1만 3,000명의 병력을 거느렸다. 이 동맹은 프리드리히 3세의 아들인 장래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네덜란드에 감금되어 있었을 때 그를 구출해내는 데 힘을 보탰고 이후 독일 남부에서 그의 주요한 지지세력이 되었다.

또한 농민반란(1524~25)의 진압을 도왔다. 이 동맹은 1534년 종교개혁의 여파로 해체되었다. 1500~1806년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슈바벤 크라이스(Kreis : '집단' 또는 '행정구역'이라는 뜻)가 있었고 또한 구(舊)제국의회에는 슈바벤 도시들의 의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