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정제

숭정제

다른 표기 언어 Ch'ungchen ti , 崇禎帝
요약 테이블
출생 1611. 2. 6, 중국 베이징[北京]
사망 1644. 4. 25, 베이징
국적 중국, 명(明)

요약 숭정제는 형인 천계제(1620~27 재위)의 죽음으로 16세에 제위에 올라 쇠락해가는 나라를 부흥시키려고 노력했다. 환관 위충현을 처형하고 부패한 관리들을 숙청했으나 관료들과 군인들의 당파싸움을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 만주족의 침입으로 명의 운명이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자 그는 더 많은 세금과 새로운 병사의 징발을 지시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처럼 과도한 부담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를 피해 반란군에 가담하는 숫자가 점차 증대했다. 결국 1644년 숭정제가 신임하던 환관 장군들이 그를 배신했으며, 반란군 이자성이 수도 베이징을 점령했다. 이자성의 군대가 수도에 접근했을 때 조회를 알리는 종을 두드렸지만 재상들은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결국 숭정제는 왕궁 옆에 있는 메이산 산에 올라가 목매어 자살했다.

조종암
조종암

이름은 주유검, 묘호는 사종·의종, 시호는 장렬민.

형인 천계제(天啓帝 : 1620~27 재위)의 죽음으로 16세에 제위에 올라 쇠락해가는 나라를 부흥시키려고 노력했다. 천계연간에 권력을 휘두르던 환관 위충현을 처형하고 부패한 관리들을 숙청했다. 그러나 관료들과 군인들의 당파싸움을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 장군들은 당파싸움에만 치중해 국내의 반란을 진압하거나 만주족의 북동 변경지역 침입을 막아내는 데 소홀했다. 더욱이 전대 왕조의 부패로 국가 재정이 거의 탕진되어 황제의 군대를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또한 명의 군대는 적군에게 투항하거나 연합하여 오히려 명을 공격하는 상황도 자주 발생했다.

만주족의 침입으로 명의 운명이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자 그는 더 많은 세금과 새로운 병사의 징발을 지시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처럼 과도한 부담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를 피해 반란군에 가담하는 숫자가 점차 증대했다. 결국 1644년 숭정제가 신임하던 환관 장군들이 그를 배신했으며, 반란군 이자성(李自成 : 1605?~45)이 수도 베이징을 점령했다. 이자성의 군대가 수도에 접근했을 때 조회를 알리는 종을 두드렸지만 재상들은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결국 숭정제는 왕궁 옆에 있는 메이산 산[煤山 : 萬歲山이라고도 함]에 올라가 목매어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