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공업 길드

수공업 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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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중세 유럽에 있었던 동업조합.
mystery(라틴어로 '직업'이라는 뜻의 ministerium에서 유래)라고도 함.

대개 특정 제조업이나 상업 분야와 관계가 있는 모든 기능인들, 그리고 때로는 원료 공급자와 소매 및 도매 상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독일 마인츠에는 1099년에, 런던을 비롯하여 잉글랜드의 여러 도시에는 헨리 1세(1100~35 재위) 시대에 직조공 길드가 생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길드가 가장 융성한 시기는 1250년 이후였다.

중세 수공업 길드의 전반적 특징은 잘 알려져 있고 대체로 유럽 전역이 놀랄 만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조합원 전체 회의는 어느 정도 입법권을 누렸지만 조합정책에 대한 지배권은 소수의 임원(잉글랜드 수공업의 경우에는 대부분 2~4명의 간부)과 조언자나 협력자로 이루어진 자문위원회가 쥐고 있었다.

전형적인 수공업 길드는 초기 단계부터 장인(master)·직인(journeyman)·도제(apprentice)의 3부류로 엄격하게 구분된 극단적 계급조직으로 발전하는 경향을 보였다(도제제도). 규모가 크고 번창하는 업계에서는 장인들이 따로 폐쇄적인 핵심 집단을 이루었다. 도제나 직인이 이 집단에 들어가려면 기능('걸작')만이 아니라 재산과 사회적 적격성까지 입증할 수 있어야 했다.

대부분의 수공업 길드가 추구하는 주요한 경제적 목표는 같은 직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조합을 결성한 모든 조합의 완전한 독점권을 확립하는 것이었지만, 수공업 길드의 실제적인 권한행사 능력은 현실적으로 상당히 제한받았다. 오늘날 남아 있는 수공업 길드의 수많은 규정은 대부분 오래가지 못했고, 조합의 독점권은 중세 말기 유럽의 경제적 어려움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허약한 경우가 많았다. 수공업 길드는 종종 판매가격을 조작하려고 애썼지만 대부분의 조합은 그 고장의 판매가격이나 임금률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한 도시 안에는 다양한 수공업이 있었는데 이러한 다양성은 특정한 하나의 수공업조합이 독점권을 최대한으로 추구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이바지했다. 이 점은 유럽 전역에서 직조공과 축융공(縮絨工) 사이에, 또는 군대나 선박에 공급권을 가진 조합과 그렇지 못한 조합 사이에 주기적으로 갈등이 발생한 것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게다가 수공업정책에 관한 지방자치단체의 감독과 간섭이 동업 조합의 모든 발달 단계에서 흔히 이루어졌고, 15세기부터는 지방자치단체 대신 정부가 간섭하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정부는 도제살이를 규제하고 법인단체의 정관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중세 수공업 길드는 부침을 거듭하면서 쇠퇴했다. 17세기에도 유럽 전역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동업조합들이 조직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16세기는 대부분의 동업조합이 결정적인 운명의 전기를 맞은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종교개혁의 파괴적인 영향과 정부 권력의 강화도 하나의 원인이었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시장과 더 큰 자본의 출현은 수공업 길드를 크게 약화시켰다.

영국과 플랑드르의 직물제조업에서 볼 수 있듯이 산업활동이 도시에서 시골로 옮겨지자 동업조합은 경제력의 주류에서 점점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부유한 상인인 자본가들의 공동조직이나 조직적으로 통제되는 회사의 출현도 수공업자 조합이 소외당한 이유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프랑스(1791), 로마(1807), 스페인(1840), 영국(1835), 오스트리아와 독일(1859~60), 이탈리아(1864)에서 수공업 길드를 폐지하는 법령 및 조례를 제정하기 오래 전에 이들의 권력기반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