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렐

소렐

다른 표기 언어 Georges(-Eugène) Sor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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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47. 11. 2, 프랑스 셰르부르
사망 1922. 8. 30, 불로뉴쉬르센
국적 프랑스

요약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혁명적 노동 공산주의자.

소렐(Georges(-Eugène) Sorel)
소렐(Georges(-Eugène) Sorel)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신화와 폭력이 적극적이며 심지어 창조적인 역할을 한다는 독창적이고 선동적인 이론을 전개했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토목기사 교육을 받았고, 40세가 되기 전까지는 사회·경제 문제에 관심이 없었으며 당시 입장은 자유주의적인 보수주의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1892년 토목기사 일을 그만두고 사색하고 연구하는 생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1893년 마르크스주의를 알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분석적인 비평 작업을 시작해 독창적이고 가치 있는 업적을 남겼다.

1897년에는 반역죄의 누명을 쓴 유대계 육군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열렬하게 변호했다. 그는 좌익 정당들이 이 사건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데 역겨움을 느끼게 되었다. 1902년에 이르러 사회주의 및 급진주의 정당들을 비판했는데, 그 골자는 이들 정당이 민주주의나 입헌정치를 옹호하며 이를 통해 사회주의로 나아가려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혁명적 생디칼리슴을 열광적으로 지지했는데, 이 운동은 계급투쟁의 자연발생성을 강조하는 무정부주의 성격을 띤 것이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작 〈폭력론 Réflexions sur la violence〉(1908)은 원래 1906년 잡지 〈사회주의 운동 Le Mouvement Socialiste〉에 기획 연재되었던 글들을 엮은 것인데,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노동 공산주의자의 입장에서 본 총파업을 모델 삼은 신화와 폭력에 대한 사상을 전개했다. 그에게 폭력이란 기존 사회질서를 혁명적으로 부정하는 힘이요, 강제력이란 국가의 폭압적인 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후 그의 폭력이론은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무솔리니에 의해 변질되어 이용되었다.

그는 유럽 사회주의의 지적 전통과 결별하여 인간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선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만족할 만한 사회질서란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인 행위에 의해 창출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1909년 이후에는 생디칼리슴 운동에 흥미를 잃었으며, 약간의 망설임과 혼란을 느끼면서도 전통적이고 동질성을 갖는 도덕질서의 회복을 지향하는 군주제 복고운동(프랑스 행동당)을 지지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볼셰비키를 지지한다고 선언했으며 볼셰비키야말로 인류의 도덕적인 쇄신을 촉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성서와 아리스토텔레스, 로마의 쇠망, 그리고 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주제를 다룬 글을 썼다. 주요저작으로는 〈노동조합의 사회주의적 미래 L'Avenir socialiste des syndicats〉(1898)·〈진보의 환상 Les Illusions du progrès〉(1908)·〈드레퓌스 혁명 La Révolution dreyfusienne〉(190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