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렐

소렐

다른 표기 언어 Agnès Sorel
요약 테이블
출생 1422경, 프랑스 프로망토
사망 1450. 2. 9, 안빌
국적 프랑스

요약 프랑스의 국왕 샤를 7세의 정부(1444~50).

때로는 '담 드 보테'(Dame de Beauté)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왕이 그녀에게 보테쉬르마른에 있는 영지를 하사했기 때문이다.

투렌의 프로망토에서 하급 귀족의 딸로 태어난 소렐은 어렸을 때 샤를 7세의 처남인 앙주의 르네의 아내이자 시칠리아 여왕인 로렌의 이자벨을 모시게 되었다. 1444년부터 죽을 때까지 소렐은 왕의 공인된 정부로서 최초로 반공식적인 지위를 부여받았다. 그후 왕의 정부들은 프랑스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소렐의 출세는 1444년 낭시의 호화로운 궁전에서 축제가 열렸을 때 시작되었다.

이 축제에서 왕은 소렐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매혹되었으며, 이후 그녀는 죽을 때까지 왕의 사랑을 받았다. 왕은 소렐에게 재산과 성과 땅을 하사했고, 왕비의 지위와 명예를 확보해주었다. 국왕이 정부를 공적으로 인정한 것은 프랑스에서는 처음 있는 일로, 이 조치는 국민을 분개시켰고 질시와 음모를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소렐이 넷째 아이를 낳은 직후에 이질에 걸려 급사하자 독살이라는 추측이 나돌았다.

부르고뉴의 역사가들은 나중에 루이 11세가 된 왕세자가 소렐을 독살했다고 공공연히 비난하기까지 했으며, 그후 자크 쾨르(루이 11세의 측근 참모임)의 적들은 그에게 뒤집어씌울 죄를 찾다가 이 소문을 이용해 그를 공격했다. 소렐 독살죄는 왕의 마음을 그에게서 돌려놓을 가능성이 가장 큰 죄였기 때문이다.

전설은 프랑스 왕국 최초로 왕의 공식적 정부였던 이 여성의 신원을 전혀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소렐이 태어난 연대는 1409년경이며 왕과 처음으로 불륜 관계를 맺은 것은 1433년이라고 한다. 소렐은 군사 행동을 벌이도록 왕을 부추겼을 뿐 아니라(소렐이 왕을 부추겨 노르망디 정복에 몸소 참여하게 한 것은 분명함) 높은 지위에 있는 동안 현명한 조언자들을 왕의 주위에 모아놓음으로써 왕으로 하여금 타고난 게으름에서 벗어나 잔 다르크의 사명을 계속 추진하게 했다고 한다.

나중에 이루어진 조사 결과 샤를 7세는 전설에 나오는 1433년보다 10년 뒤에야 소렐을 처음 만났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이 낭만적인 전설은 그야말로 지어낸 이야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