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린

셀린

다른 표기 언어 Louis-Ferdinand Céline 동의어 루이 페르디낭 셀린, 루이 페르디낭 데투슈, Louis Ferdinand Destou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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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94. 5. 27, 파리 근처 쿠르브부아
사망 1961. 7. 1, 프랑스 뫼동
국적 프랑스

요약 프랑스의 작가·의사.
본명은 Louis-Ferdinand Destouches.

셀린(Louis-Ferdinand Céline)
셀린(Louis-Ferdinand Céline)

1924년에 의학학위를 받았고, 국제연맹에서 의료 사명을 띠고 여러 곳을 여행했다. 1928년 파리 근교에서 개업했고, 시간이 나면 글을 썼다. 1932년에 나온 첫 소설 〈밤의 끝으로의 여행 Voyage au bout de la nuit〉으로 유명해졌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 생의 의미를 찾아헤매는 인간의 이야기를 격렬하고 체계 없는 문체로 쓴 이 소설로 인해, 그는 20세기 프랑스 문단에서 중요한 혁신적 인물로 주목받았다.

1936년 출판된 〈저당잡힌 죽음 Mort à crédit〉도 첫 소설과 비슷하게 가치와 아름다움과 예절을 잃어버린 세계를 황량하게 그린 것이다. 좌익을 옹호했지만 소련을 방문한 후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고, 1937년 〈죄의 고백 Mea Culpa〉에서 그러한 각성에 대해 썼다. 후에 그는 광적으로 반유대인 감정을 키워갔고, 3권의 악명 높은 책으로 이를 표현했다. 〈학살해 마땅한 것들 Bagatelles pour un massacre〉(1937)·〈시체파 L'École des cadavres〉(1938)·〈진퇴양난 Les Beaux Draps〉(1941) 등으로 이 작품들은 또한 프랑스인도 통렬히 비난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야전병원 군대에 입대했으나 1940년 프랑스가 함락된 뒤에는 협력과 저항을 모두 거부하고 브종의 의무실로 돌아가 일했다. 프랑스가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자 나치 협력자로 레지스탕스의 위협을 받은 그는 독일을 거쳐 덴마크로 도망갔다. 당시 덴마크는 연합 폭격찬성운동이 고조되어 있었으며, 그곳에서 그는 나치에 협력했다는 혐의로 1년 이상 감옥에 있었으나 1951년에 조국으로부터 무죄선고를 받은 후 프랑스로 돌아가도록 허락받았다. 돌아오자마자 다시 의사로 개업했고, 계속해서 글도 썼다.

마지막 작품은 〈성에서 성으로 D'un Châeau l'autre〉(1957)·〈북부 Nord〉(1960)·〈리고동 무용 Rigodon〉(1969)으로 이루어진 3부작으로, 여기에서 그는 독일의 입장에서 본 제2차 세계대전을 묘사했다. 일부 비평가들은 생동감과 문체에 있어서 이 작품들이 2편의 훌륭한 초기 소설에 비길 만하다고 했다. 그밖의 작품으로는 〈인형악단 Guignol's Band〉(1944)·〈사격 연습장 Casse Pipe〉(1949)·〈Y교수와 나눈 대화 Entretiens avec le Professeur Y〉(1955) 등이 있다.

1930년대에는 좋은 평판을 누렸지만 신경질적인 인간 혐오증이 점점 악화되어 전쟁 이후에는 명성이 줄어들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혹독한 절망, 도덕에 대한 무관심, 분노와 외설은 계속해서 일부 현대 비평가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비평가들은 그의 묵시록적인 서정성을 칭찬할 때조차도 밑바닥에 깔린 그의 세계관에는 반대한다. 어떤 현대 비평가들은 고뇌에 차 있으면서도 화려한 그의 문체에 역설적으로 인본주의가 내재되었다고도 하며, 그의 광란을 견딜 수 없는 세상의 악에 대한 반란으로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