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 리큐

센 리큐

다른 표기 언어 Sen Rikyu , 千利休
요약 테이블
출생 1522, 사카이[堺]
사망 1591. 2. 28, 사카이
국적 일본

요약 일본의 센고쿠,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다도의 대성자.

할아버지인 다나카 센나미[田中千阿彌]는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의 도보(쇼군이나 다이묘의 측근에서 예능이나 다도에 종사했던 사람)에 근무했고, 아버지 대에 이즈미 구니의 사카이로 이주하여 물고기 도매상이 되었으며, 가명을 센나미에서 한 자를 따 센[千]이라고 했다.

리큐는 처음에 다도를 노아미류의 기타무키 도친[北向道陳]에게 배웠으나, 곧 무라타 주코[村田珠光]의 제자의 제자인 다케노 조오[武野紹鷗]에게 사사했다. 교토의 다이토쿠 사에서 선(禪)도 배웠다. 리큐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봉사하며 다도에 관한 일을 맡아보았으며 히데요시에게서는 봉토를 받았다. 항상 히데요시의 측근에서 차에 관한 모든 일을 지휘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와 외교에도 참여하여 은연중 권세를 누렸다.

60세경부터 새로운 각도로 연구하여 다사 개혁에 전념하여 그가 좋아하는 취향이 천하에 풍미하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앞다투어 그의 문하에 들어왔다. 그러나 1591년 히데요시와 충돌하게 되어 결국 처벌을 받아 할복했다. 자신의 목상(木像)을 절에 안치했다는 것과 자작한 차도구가 비싼 값에 팔린 것이 처벌의 구실이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그는 기골이 있는 순수한 예술가이고 해학성이 풍부한 인물이라고 평가된다.

그는 주코 파 다도의 깊은 뜻을 연구했으며, 새 시대에 맞는 다도의 취향을 개발하고 다도의 이론도 대성했다. 리큐는 주인과 손님의 마음이 일체가 되어 다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다도의 근본이라고 보았다. 다도는 원래 부처에 봉사하는 승려의 업(業)을 속인이 모방한 것이기 때문에 주인이나 손님이 다같이 성의를 다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하며, 또 부처의 은혜는 만인에 평등하게 베풀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도에는 부귀비천의 차별이 없고 모두 인간으로서 평등하다고 했다.

다도를 통해 인간생활의 진정한 가치를 느끼고 화목의 묘미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그가 확립한 다도의 이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