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

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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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노르만 정복(1066) 이전의 잉글랜드 역사에서 자유토지보유자(free retainer) 또는 영주.
thane이라고도 씀.

노르만 정복 이후의 귀족과 기사의 여러 위계에 해당한다. 이 단어는 애설스턴 왕(939 죽음) 시대 이전 법률에 단 한번 나온다.

세인은 지역 귀족계급의 일원이 되었으며 세인의 신분은 일정 조건을 갖춘 사람이어야 받을 수 있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성공적인 세인은 백작이 될 희망을 가질 수도 있었다. 일부는 출생 신분에 따라 세인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세인의 신분은 세습되는 경우와 자신의 힘으로 획득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 신분은 왕족보다는 낮았지만 일반 체얼(ceorl 自由農民)보다는 높은 신분이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세인의 수가 늘어나자 서열이 세분되었다. 왕에 속하는 세인(초기 세인에 해당함) 계층, 그리고 그들보다 숫자는 많지만 1급 낮은 주교의 세인 계층, 다른 세인 아래에 속한 세인들로 이루어진 계층이 생겨났다. 왕에 속한 세인이라는 말의 라틴어 번역어 '코메스'(comes:이 말에서 '백작'이라는 말이 나왔음)에 나타나 있는 그 시대의 생각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대단히 영향력 있는 인물로서 특권을 누렸으며 왕 이외에는 아무도 그들에게 사법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헌드레드(지역단위) 하나에서 고위급 세인은 12명이었으며 이들은 영국 사법제도 발전에 이바지했다. 에설레드 2세의 법에 따라 기소를 결정하는 사법위원회로서 그들은 현대의 대배심원(grand jury)과 비슷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스코틀랜드에서 세인은 15세기까지 왕의 세습소작인을 뜻했으며 군인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