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산파

성주산파

다른 표기 언어 聖住山派

요약 통일신라시대 선문구산의 하나.

무염국사가 보령의 성주사에서 개산했다. 제자로는 영각사의 심광·대통·여엄 등이 있다. 무염은 대통·여엄 등을 가르칠 때 광종대사로 불렸다.

그는 당나라에 들어가 마조의 문하인 백낙천과 그의 도우인 여만에게 법을 묻기도 하다가 같은 마조의 문하인 보철의 심인을 받아 귀국했다. 귀국 후 무염은 왕위쟁탈전에서 패한 왕자 흔(昕)의 시주를 받아 그의 수봉지소인 충청남도 보령 숭엄산 오합사에 머물면서 숭엄산문을 개창했다.

김흔은 김양과 사촌간으로 청해진의 군병을 대구에서 방어하다가 패한 후 곧 은퇴하여 산중재상이라 불렸던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후원하던 민애왕이 살해되고, 맞서 싸우던 우징(祐徵:신무왕)이 김양의 후원으로 즉위함에 따라 은퇴했다. 오합사는 성주사로 이름이 바뀌어 고려 광종 때는 성주산문이 되었다.

성주산문이 초기 숭엄산문이었던 것은 951년에 지은 〈조당집〉 17권에 보이는 '숭엄산 성주사 고 양조국사'와 이후 제자들과 법손들이 지은 금석문을 보아 알 수 있고, 후에 숭엄산문이 성주산문으로 바뀐 것은 보원사 법인국사 보승탑비에 성주사가 성주원으로 불린 것으로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