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공업

섬유공업

다른 표기 언어 textile industry , 纖維工業

요약 섬유를 생산하거나 원료로 사용하는 산업.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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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원 및 현황
  2. 한국의 섬유공업
섬유공업
섬유공업

일반적으로 의류나 방한용 제품을 비롯한 특수용도의 섬유를 생산하는 공업을 가리킨다.

넒은 의미로는 원료·중간재 및 최종상품을 제조·가공하는 공정을 비롯하여 섬유를 가공하여 섬유사·로프·망·연사 등의 생산, 각종 섬유사로 직물이나 편직물의 생산, 각종 섬유사·직물·편직물 등의 가공·염색·정리·표백, 직물의 경포·도포·방수·삼투 등의 처리까지 포함된다.

섬유공업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산업이며, 새로운 기술혁신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산업이다. 섬유공업은 중화학공업에 비해 고도의 기술이나 많은 자본이 필요하지 않고 저임금의 많은 노동력이 요구되므로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 발전해왔다. 섬유공업 내에는 제조공정이 서로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고, 제품의 소재는 동물성·식물성·광물성·화학성 원료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섬유공업은 일반적으로 섬유원료 제조업(화학섬유의 장섬유와 단섬유), 방적업(면사, 모사, 혼방사, 화섬사, 견사 등), 직물제조업, 의복 및 장신구 제조업, 기타 섬유제품 제조업(어망, 로프, 위생재료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직물제조에 사용되는 소재는 천연섬유·인조섬유·화학섬유로 분류된다.

기원 및 현황

섬유공업의 기원 및 현황
섬유공업의 기원 및 현황

인류가 언제부터 섬유를 생산했으며 천을 만들기 시작했는지는 명백하지 않다. 그러나 스위스의 호수 밑바닥에서 발견된 유물에 의하면 1만여 년 전의 신석기시대에 이미 마류와 수모로 실을 뽑아 직물과 어망 등을 만들어 사용했음을 알 수 있고, 또한 5,000년 전 것으로 보이는 면포가 인더스 강가에서 발견된 것을 비롯해 아메리카 대륙의 잉카 제국 이전에 면포가 사용되었다는 보고, 4,500년 전 중국의 황제비가 양잠을 권장했다는 역사적 기록을 보더라도 적어도 5,000여 년 전 내지 1만 년 전부터 마, 모, 면, 견 등이 피복재료로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섬유공업이 발달되어감에 따라 섬유의 용도는 피복의 재료뿐만 아니라 주생활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나 공업용으로 널리 확대되었다. 이러한 용도의 확대는 섬유수요의 증대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수요의 급격한 증대로 인해 과거의 생산섬유인 면, 모, 마, 견만을 가지고 급증하는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새로이 요구되는 여러 분야에 적응할 수 없어 새로운 섬유자원을 찾게 되었다. 이리하여 인조섬유라는 새로운 분야가 개척되었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생산되기 시작한 인조섬유는 초기에 천연섬유와 상당한 경합을 벌였다. 그러나 1950년 이후 합성섬유가 생산되면서 인조섬유가 천연섬유로서 얻을 수 없는 특성을 갖출 수 있게 되어 인조섬유의 독자적인 소비처가 개척되었으며, 인조섬유의 생산과 소비가 급속히 증가하여 1978년에는 전체 인조섬유의 생산(1,329만t)이 면생산(1,306만t)을 능가함으로써 전섬유생산의 반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천연섬유의 방적과 직조에 있어서 기술의 혁신은 대체로 생산의 고속화와 품질개선에 집중되어 있었다. 따라서 종래의 전통적인 섬유산업에는 농업의 발달로 품종개량이 이루어짐에 따라 1차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18세기 중엽부터 영국산업혁명의 핵심이었던 섬유산업의 기계화 과정은 J. 하브리브스의 방적기의 개발을 가져왔다. R. 아크라이트의 수력방적기(1769), S. 크램프톤의 방면기(1779), 그리고 J.M. 자카르의 직기(Jacquard loom) 등은 이 시기에 대표적으로 실용화된 동력섬유기계로서 섬유제품의 양산을 가능하게 했으며 그 이후 최근까지 생산공정의 단축과 고속화 그리고 제품의 품질향상이 계속되었다. 또 합성염료의 개발과 함께 롤러 날염기가 출현하여 여러 가지 공정의 기계화가 완성되어 그후 섬유산업체계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섬유공업의 본격적인 기술혁신은 석유화학공업의 발달에 의한 인조섬유의 개발을 중심으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인조섬유는 금속 및 규산질의 무기섬유와 재생·반합성·합성 섬유 등을 포함하는 유기섬유 등으로 구분되는데, 흔히 인조견사로 불리는 레이온의 개발로부터 시작되었다. 화학섬유는 그 개발목적을 천연섬유를 닮은 장섬유의 개발과 품질의 다양화에 두고, 또한 2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천연섬유에 대한 대체섬유로서 필요성이 확대되어 그 개발이 크게 촉진되었다. 재생섬유인 레이온은 1884년 프랑스의 샤르돈에 의해 처음 시험·제조되어 질소섬유 레이온이라 불렸으나 가연성이 높아 제조가 중지되었다가 뒤에 가연성이 적은 방법으로 개선되어 다시 제조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동암모니아 레이온이 독일에서 개발되어 실용화되었으며 1900년에는 펄프를 원료로 사용하는 비스코 스레이온이 개발되었다. 1907년 반합성섬유와 재생섬유의 중간성질을 가진 아세테이트사(絲)가 개발되어 1970년부터 미국에서 실용화되어 편직과 직조에 사용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비스코스레이온과 아세테이트에 국한되었던 인조섬유의 개발이 1930년대 이후 합성섬유가 차례로 개발되면서 크게 확장되었다. 1938년 미국에서 3대 합성섬유라 할 수 있는 나일론이 뒤퐁사에서 처음으로 개발되어 급속히 확산되었다. 그후 세계적으로 약 10여 종류의 새로운 합성섬유가 개발되었고 생산성에 있어서 이미 양모나 레이온을 능가하는 면섬유의 생산량에 달했다.

천연 섬 유 식물성 섬유 종자섬유(種子纖維):면화, 케이폭면
인피섬유(靭皮纖維):아마, 황마, 청마, 양마
엽맥섬유(葉脈纖維):마닐라마, 사이잘마(Sisal)
과실섬유(果實纖維):야자섬유
동물성 섬유 수모섬유(獸毛纖維):양모, 산양모
견섬유(絹纖維):가잠견(cultivated silk), 야잠견(wild silk)
광물성 섬유 석면(石綿)
인 조 섬 유 재생섬유 셀룰로오스 섬유(레이온):비스코스레이온, 구리암모늄레이온, 폴리노직레이온
초산 셀룰로오스 섬유(아세테이트):보통 아세테이트, 트리아세테이트
단백질섬유(아즐론):카제인 섬유, 아라킨 섬유, 제인 섬유, 글리시닌 섬유
알긴산 섬유
고무섬유
합성섬유 축합중합체섬유 (縮合重合體纖維) 폴리아미드 섬유(나일론):나일론, 나일론11, 나일론4, 키아나, 나일론6T, 아라미드
폴리에스테르 섬유(폴리에스테르):데이크론, 코델, 폴리에스테르에테르
폴리우레탄 섬유(스판덱스):라이크라, 오플론
첨가중합체섬유 (添加重合體纖維) 아크릴 섬유:올론, 한일론, 에이스란
모드아크릴 섬유:다이넬, 베렐, 카네카론
올레핀 섬유(폴리프로필렌):메라클론, 해피론, 오프린
폴리비닐알코올 섬유:비닐론, 크레모나, 뮬론
폴리염화비닐 섬유:비니온
폴리비닐리덴디니트릴 섬유:사란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 섬유
무기섬유 유리섬유
금속섬유:루렉스, 스테인리스강 섬유
탄소섬유
암면섬유
섬유의 분류

한국의 섬유공업

섬유공업은 근대적인 한국공업의 생산과 발전에 있어서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한 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물레와 베틀을 이용하여 비단·모시·무명·삼베 등의 천연섬유를 생산했다. 그후 8·15해방 이전에는 대부분이 일본 자본에 의해 가장 근대적인 금융형태와 생산방식을 채용한 산업으로서 화학공업 및 식품공업과 함께 대표적인 공업으로 군림했다.

1950년대 시설의 근대화와 생산의 확장이 다른 공업에 비해 매우 원활히 이루어졌다. 1950년대 말에는 섬유업계에 대한 방만한 투자로 공급과잉과 유휴시설의 문제에 직면하여, 일시적인 정체기를 맞기도 했다. 이와 같이 1950년대에 섬유공업이 신속하게 수입대체와 아울러 자급태세를 갖출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은 당시 원조자금에 의한 시설 및 원자재의 원활한 공급,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의 공급, 적은 자본과 낮은 기술수준으로도 손쉽게 공업확장을 도모할 수 있는 섬유공업의 특징에 기인한 것이다.

모방직공업은 1950년대의 수입대체기에 가장 괄목할 만한 신장세를 보인 분야였다. 1960년대초까지 약간의 천연섬유 생산을 제외하고는 섬유의 수요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했으나 1963년 나일론의 생산을 시작으로 꾸준히 인조섬유의 생산이 증가하여 수출주도산업으로서 생활수준의 향상과 개발재원의 조달에 가장 크게 기여했고 1970년대에는 한국공업에 있어 그 비중이 가장 큰 산업으로 성장했다.

1·2차 석유 및 자원 파동이 있었던 1974, 1975년과 1979, 1980년에는 그 성장세가 다소 둔화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상당히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특히 의복 부문의 성장률이 두드러졌다. 1974년에 섬유제조업의 부가가치와 고용은 전제조업의 13.1%와 24.2%를 각각 차지했으며, 의류를 포함한 섬유제품 수출액은 한국의 총상품수출의 34.2%에 해당했다. 이 생산 부문의 성장·고용 증대 및 외화획득면에서의 중요성에 비추어 섬유공업정책은 한국의 산업·무역 및 고용정책의 핵심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중화학공업 중점육성정책에 따라 생산·고용·수출에서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저하되어왔다. 더욱이 1980년대에 들어와 세계섬유시장의 구조변화와 무역환경의 변화에 의해 일대 전환기에 처하게 되었다. 선진국에 의한 수입규제강화와 개발도상국의 추격에 의해 수출·수요가 감소함과 더불어 국내외 경제의 침체에 따른 내수의 부진으로 국내섬유계는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