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고문

석고문

다른 표기 언어 stone-drum inscriptions , 石鼓文

요약 중국에 현재 남아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석각문자(石刻文字).

당대(618~907) 초기에 산시 성[陝西省] 천흥현(天興縣:지금의 펑샹 현[鳳翔縣])에서 발견되었다. 석고는 모두 10개였는데 각 돌마다 모두 4언시 1수 씩 새겨져 있었다. 10개의 석고는 각각 오거(吾車)·견면(汧沔)·전거(田車)·칙홀(勅來)·영우(霝雨)·작원(作原)·이사(而師)·마천(馬薦)·오수(吾水)·오인(吳人)으로 나누어진다.

내용이 모두 사냥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이를 '엽갈'(獵碣)이라고 불렀고, 통칭 석고문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작원'은 오대(五代:907~960) 시기의 난리통에 없어졌다가 그 이후 송나라 때인 1052년(皇祐 4)에 민간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농부가 반 덩어리를 잘라간 뒤였고, 글자는 겨우 맨 아랫부분의 각 행마다 새겨져 있던 4자뿐이었다.

석고문이 만들어진 시대에 관해서는 그동안 여러 주장이 나왔으나, 1931년에 마헝[馬衡]이 〈석고위진각석고 石鼓爲秦刻石考〉를 지은 후 비로소 진(秦)나라 때의 석각문자임이 공인되었다. 석고는 2,000여 년 이상의 세월을 지내는 동안 표면이 많이 벗겨지고 부서져 나가서 지금은 그위에 새겨졌던 글자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오래전에 떠둔 탁본(拓本)이 매우 진귀하게 남아 있으며, 현재 북송(北宋:960~1126) 때의 탁본이 있다. 원래의 석고는 베이징[北京] 구궁[故宮]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