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회의

샌프란시스코 회의

다른 표기 언어 San Francisco Conference

요약 국제연합(UN)의 창설이 결정된 국제회의(1945. 4. 25~6. 26).
공식 이름은 United Nations Conference on International Organization.

연합국의 정치적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전세계적 차원의 조직을 결성한다는 기본 원칙은 1944년 덤바턴오크스 회의에서 제안되었고 1945년 얄타 회담에서 재확인되었다.

회담은 1942년의 '연합국선언'에 가담했던 46개국 대표들에 의해 진행되었으나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미국의 에드워드 스터티니어스, 영국의 앤터니 이든, 소련의 V. M. 몰로토프, 중국의 숭쯔위안[宋子元] 등 이른바 4대강국의 외무장관들이었다. 이외에도 5개국이 더 참가했는데 독립국이 아니라는 몇몇 서방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가 참여했고 아르헨티나와 덴마크도 참가가 허용되었다. 소련의 후원을 받던 폴란드의 루블린 정부는 정통성 문제로 참여가 보류되어오다가 이후 51개 원(原)회원국의 하나로 인정되었다.

회담에서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4대 강국과 프랑스)의 거부권이 총회의 토론과정에까지 확대되어야 한다는 몰로토프의 주장이 쟁점의 하나로 떠올랐다. 그러나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개인고문 해리 홉킨스를 모스크바로 보내 사안을 협의한 이후 요시프 스탈린은 이 제안을 철회했다. 회담은 참가국 대표들로 구성되어 일반의제와 절차문제를 심의하는 운영위원회에서 의사진행을 담당했으나 운영위원회의 결정들은 전체 총회의 승인을 필요로 했다. 4대 강국과 그외 10개 국가의 대표로 이루어진 집행위원회는 운영위원회의 논의사안을 건의하는 기능을 수행했으나 절차문제의 결정에 관여할 때가 많았다. 구체적인 업무는 전체 참가국 대표들로 구성되는 4개의 위원회에서 행했으며 각 위원회는 업무지원을 위해 2개 이상의 전문위원회를 둘 수 있었다. 회담은 6월 26일 50개 국가가 국제연합헌장에 서명하는 것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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