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살리에리

안토니오 살리에리

다른 표기 언어 Antonio Salie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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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750년 8월 18일
사망 1825년 5월 7일
국적 이탈리아

요약 16세 때에 황제 요제프를 만났고, 4년 뒤 요제프 황제에 의해 궁정작곡가로 임명되었다. 1788년에는 궁정악장이 되어 이후 36년 동안 일했다. 재직 중 오스트리아의 극장들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극장들을 위해서도 여러 오페라를 작곡했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프랑스어 오페라 <타라르>이다. 빈 사람들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보다도 이 작품을 더 좋아했다. 1804년 공연된 마지막 오페라를 끝으로 이후 종교음악 작곡에 몰두했다. 요제프 하이든과 루트비히 판 베토벤과 친교를 맺었고, 특히 베토벤에게는 대위법을 가르쳤다. 이에 비해 모차르트는 안토니오 살리에리를 불신했다. 살리에리가 자신에게 독약을 먹이려 했다는 모차르트의 생각은 근거 없는 것이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살리에리(Antonio Salieri)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오페라들은 18세기말 전유럽에서 갈채를 받았다. 16세 때에 오스트리아 궁정작곡가이자 궁정악장이던 F.L.가스만의 인정을 받아 빈으로 간 살리에리는 황제 요제프를 만날 수 있었다.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첫 오페라 〈여류문인들 Le donne letterate〉은 1770년 빈의 부르크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4년 뒤에 요제프 황제에 의해 궁정작곡가로 임명되었고, 1788년에는 궁정악장이 되어 이후 36년 동안 일했다. 재직중 오스트리아의 극장들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극장들을 위해서도 여러 오페라를 작곡했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인 프랑스어 오페라 〈타라르 Tarare〉(1787)는 이탈리아어에 의한 〈Axur, re d'ormus〉로도 공연되었고, 빈 사람들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Don Giovanni〉보다도 이 작품을 더 좋아했다. 1804년에 공연된 마지막 오페라를 끝으로 이후 종교음악 작곡에 몰두했다.

요제프 하이든과 루트비히 판 베토벤과 친교를 맺었고, 특히 베토벤에게는 대위법을 가르쳤으며, 3곡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12번을 헌정했다(1797). 이에 비해 모차르트는 안토니오 살리에리를 불신했으나, 그렇다고 살리에리가 자신에게 독약을 먹이려 했다는 모차르트의 생각은 근거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전설적 내용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Mozart et Salieri〉(1898)의 기초가 되었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를 좀더 세심히 다룬 작품은 피터 셰퍼의 희곡 〈아마데우스〉(1979, 영화화 1984)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