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드라 굽타

사무드라 굽타

다른 표기 언어 Samudra Gupta
요약 테이블
출생 미상
사망 380경
국적 인도

요약 330경~380년경에 재위하여 인도의 상당히 넓은 지역을 다스린 황제.

'힌두 역사의 황금시대'로 간주되는 굽타 왕조(320~510)의 '이상적 군주'의 전형이었다. 찬드라 굽타 1세와 리차비의 공주 쿠마라데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투에서 얻은 수백 개의 상처'를 가진 용맹한 전사인 동시에 시인이자 음악가였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는 인도 영웅의 축소판이었다.

그는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아버지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으나 재위 첫해부터 반란을 진압해야 했다. 당시 현재의 알라하바드에서 벵골 국경지대까지 걸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 왕국을 평정하면서, 지금의 델리 지방 가까이에 있는 왕국의 북쪽 근거지로부터 일련의 영토 확장 전쟁을 개시했다. 칸치푸람의 팔라바 왕국 남부에서 사무드라 굽타는 비슈누고파 왕을 격파했으나 그를 비롯한 싸움에 진 다른 왕들이 조공을 바치는 대가로 왕위에 복위시켰다.

북부지역의 몇몇 왕들은 제거되고 그들의 영토는 굽타 제국에 흡수되었다. 사무드라 굽타의 전성기에는 갠지스 강 유역의 거의 전지역을 통치했고 동부 벵골, 아삼, 네팔, 펀자브의 동부지역, 라자스탄의 여러 종족들을 복속시켰다. 그는 전쟁을 통해 9개의 왕국을 멸망시키고 12개의 왕국을 복속시켰다.

금화의 명각과 아소카 왕이 세운 알라하바드의 한 성채에 있는 석주(石柱)에 새겨진 기록을 보면 사무드라 굽타는 힌두교의 비슈누 신을 지극히 섬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원정에서 개선하면서 그는 말을 제물로 바치는 고대 베다의 제사를 부활시키고 제사 기간 동안 많은 돈을 자선을 위해 베풀었다. 이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금화를 주조했으며 다른 금화에는 하프를 타는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금화는 모두 순도가 높았고 세공기술도 우수했다.

그는 브라만 계급 출신이었기 때문에 카스트 제도를 지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굽타 왕조는 브라만교가 현대 힌두 사회에까지 전해내려온 사회적 행위의 법전뿐 아니라 신학체계를 갖추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