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시컬럼비아

브리티시컬럼비아

다른 표기 언어 British Columbia

요약 캐나다의 주. 1774년 스페인 배가 이 지역에 제일 처음 도착했고, 그 뒤를 이어 북서항로를 탐색중이던 쿡 선장이 도착했다. 영국과 미국의 모피상들이 최초의 개척자였으며, 밴쿠버 섬에 대한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지속되다가 영국의 독점권이 인정되자 영국은 밴쿠버 섬을 직할식민지로 만들었다. 1980년대에는 오지의 삼림과 광물 생산, 강물을 이용한 수력발전, 고원과 강 유역에서의 농업 등을 중심으로 현대적인 경제번영을 누렸다. 관광업과 해상무역도 경제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빅토리아(British ColumbiaVictoria)
브리티시컬럼비아, 빅토리아(British ColumbiaVictoria)

서쪽은 태평양과 미국의 알래스카 주, 북쪽은 유콘·노스웨스트 준주, 동쪽은 앨버타 주, 남쪽은 미국의 북서지방과 경계를 이룬다. 남북 길이는 1,180㎞이고 동서로 가장 긴 곳은 1,020㎞이다. 주도는 빅토리아로 밴쿠버 섬 남단에서 남서쪽 가장 끝에 위치한다. 유럽 개척민들이 이곳을 처음 찾았을 당시, 인디언들의 수는 약 8만 명 정도였다.

코스트샐리시족·누트카족·크와키우틀족·벨라쿨라족·침시안족·하이다족 등 인디언 부족들이 해안을 장악하고 있었다. 수산자원과 거대한 삼나무가 풍부해 경제형편은 윤택했고,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고도로 발달한 교역체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 해당하는 지역을 유럽인이 처음 발견한 때는 18세기 말엽이었다(→ 대영제국). 1774년 스페인 배들이 제일 처음 도착했고, 그 뒤를 이어 북서항로를 탐색중이던 쿡 선장이 도착했다. 영국과 미국의 모피상들이 최초의 개척자였으며, 밴쿠버 섬에 대한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수년에 걸쳐 지속되었다.

그러다 마침내 영국의 독점권이 인정되었고, 1849년 영국 정부는 밴쿠버 섬을 영국의 직할식민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총독과 모피전문 회사인 허드슨스베이사는 이곳에 정착하는 것이 최대의 이윤을 보장해주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 체계적인 정착을 추진하지 않았다.

1858년 금광 발견으로 최초의 대규모 이주가 시작되고 빅토리아 요새(허드슨스베이사의 서부 본부가 있는 곳)가 도시로 발전하면서 본토 정착의 길이 트이게 되었다. 이 지역이 번창하고 활기가 넘치게 되자 영국은 1858년 이곳을 브리티시컬럼비아 식민지로 선포했다.

1865년 골드러시가 가라앉으면서 인구가 줄었으나 그들이 영주민으로 남아 새로 발전하는 사회의 핵을 이루게 되었다. 교통과 통신망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해 있었는데 밴쿠버까지 철도망이 확장되었고 밴쿠버와 동양을 잇는 증기선도 운항하게 되었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자원산업의 번창으로 경제는 다시 활기를 찾았다. 1918년 이후, 전후의 경제적 곤란을 동양인 노동자들의 탓으로 보는 시각이 대두되면서, 1923년 배타주의적 법률이 통과되는 등 동양인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동양인들은 1940년대에 비로소 참정권을 얻게 되었다.

잠시 회복되었던 경제는 1930년대의 공황으로 다시 침체되었다가 1939년의 대독 선전포고 후에 원상복구되었다. 번영은 전후에도 지속되었고 정치적 변화도 수반되었다. 보수당의 소수파와 자유당이 사회신용당(Social Credit Party)을 결성해 1952년 여당이 되었고, 이들은 1972년 진보적인 신민주당(New Democratic Party)이 지역선거에서 승리할 때까지 여당의 자리를 계속 지켜나갔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광대한 영토는 거의 남북 아메리카의 서쪽 가장자리를 따라 뻗어 있는 대규모 산계, 즉 코르디예라 내에 속해 있다. 해안선을 따라 분포되어 있는 수백 개의 섬들(가장 큰 섬은 밴쿠버 섬과 퀸샬럿 제도)은 선박들의 대피처 역할을 한다. 섬들의 절반 이상에 삼림이 형성되어 있으나 1/3가량은 툰드라 황무지, 빙원, 빙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3/4 이상이 고도 900m를 넘으며, 방목에만 적합하다. 코르디예라 외곽에 위치한 북단의 피스 강 유역에만 대규모 농사에 적당한 지역이 있다. 수천 개에 달하는 호수는 규모는 작으나 수력발전과 연어 산란장소로 중요하다.

1980년대초에 이 주는 캐나다에서 가장 도시화되고 다양한 인종이 사는 주였다. 중국인·일본인·스웨덴인·노르웨이인·이탈리아인·미국인 등 주목할 만한 소수 민족들이 있었지만 지배집단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영국계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인들의 대규모 이주로 인해 영국계 주민의 구성비가 1970년대에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1980년대의 브리티시컬럼비아는 오지의 삼림과 광물 생산, 강물을 이용한 수력발전, 고원과 강 유역에서의 농업 등을 중심으로 현대적인 경제번영을 누렸다. 관광업과 해상무역도 경제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 캐나다와 북아메리카 서부에서 가장 큰 항구인 밴쿠버에서는 프레리 지방과 유콘 준주의 생산품을 실어 나른다.

주의 의회정치는 1856년부터 시작되었으나 현재의 체계는 브리티시컬럼비아가 캐나다 연방에 가입한 1871년에 성립되었다. 주정부는 입법부·행정부·사법부로 이루어져 있다. 입법부는 참정권을 갖는 전체 성인들에 의해 선출된 임기 5년의 주의회 의원들로 구성되고 행정부는 다수당의 당수가 겸임하는 총리와 부총독으로 이루어진다.

총리는 주의회 의원들 중 18명의 행정위원을 선출하고, 부총독은 영국왕의 대리인 자격을 갖고 있는 캐나다 총독에 의해서 임명된다. 사법부는 대법원, 상소법원, 캐나다 총독이 임명하는 판사들로 구성된 군(郡)법원, 주 최고법무관이 임명하는 판사 및 관리로 이루어진 하급법원의 조직을 갖고 있다.

소액의 통일된 비율에 따른 자발적 기금으로 운영되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종합의료혜택 제도는 주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고, 브리티시컬럼비아 병원보험 제도를 이용하면 병원에서 저렴한 치료도 받을 수 있다. 주민 대부분이 이 2가지 의료 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다.

빈민들에게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법률구조도 이루어지고 있다. 밴쿠버에 위치한 브리티시컬럼비아 마약중독 재단은 만연하는 마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정신질환 치료도 무료로 해주고 있다.

공립국민학교와 중학교는 12학년까지 무상 의무교육이고, 원하는 사람은 무료 유치원에 다닐 수 있다. 밴쿠버에는 농아·맹아·정신지체자 들을 위한 특수학교가 있다. 주로 종교계에서 세운 사립국민학교는 5% 정도 되고 정부보조를 받고 있다. 연방정부가 세운 인디언 학교도 있다.

중등교육을 마치면 각종 직업학교, 브리티시컬럼비아기술대학, 지역사회대학 등으로 진학할 수 있고 수준 높은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위해서는 밴쿠버 소재의 브리티시컬럼비아·사이먼프레이저·빅토리아 대학교 등에 진학할 수 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활동의 대부분은 이 지역의 개척자적 전통과, 자원산업·야외활동을 주축으로 이루어지는 경제의 움직임을 반영한다.

해마다 열리는 윌리엄스 호(湖) 스탬피드와 킬로나 요트 대회는 유명하다. 좀더 큰 읍급 도시에서 열리는 문화행사는 변경지역과 도시 스타일의 중간적 형태를 띠고 있다. 박물관·화랑·극장 등의 문화 센터들이 지역 기업가와 유통업체들의 후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학술활동 지원단체로는 밴쿠버 협회와 밴쿠버 역사학회가 있다. 면적 944,735㎢, 인구 4,400,057(2011 추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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